1997년 1월 부도 후 5년간 법정관리 상태지만 공장은 의외로 활기에 넘쳐 있다. 철근을 만드는 봉강공장 내 전기로는 연방 뜨거운 연기를 내뿜으며 쉴새없이 쇳물을 쏟아내고, 벌겋게 달아오른 철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레일을 달리고 있다.
10∼32㎜ 굵기의 철근이 15∼20개씩 묶여 3초마다 하나씩 만들어지는 철근뭉치는 생산되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대형 트레일러에 실려 나간다. 하루 평균 150∼200대의 트레일러가 제품을 전국으로 운반한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점심 시간, 구내식당에서 만든 식사가 공장 곳곳으로 배달됐다. 대부분의 현장 근로자들이 이렇게 식당에서 날라다 주는 식사를 작업장 한쪽에 마련된 간이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연간 100만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에서 115만t의 철근을 생산하다 보니 근로자들의 작업시간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13만t을 보관할 수 있는 1만2000㎡의 제품창고는 거의 텅 비어 있다. 신승주 총무팀 차장은 “적정 재고량을 3만t으로 보고 있는데 종일 가동해도 재고량이 하루 이틀 생산량인 7000t 정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전기로 조작실에서 근무하는 이신영 계장(49)은 “94년 공장을 지을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이곳을 지켜왔지만 요즘처럼 일할 맛 난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철근 호황 덕분에 한보철강의 경영실적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액은 반기 실적 처음으로 2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754억원)에 비해 19.8% 증가한 2102억원.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 82억원에서 251억원으로 뛰었다. 특히 경상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1458억원 적자에서 675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경상이익 흑자를 내기는 95년 1월 공장 가동 이래 처음이다.
이 덕분에 부도 이후 운영자금으로 빌린 차입금 956억원을 모두 갚았다.
자산관리공사는 자산매각 방식으로 한보철강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낙찰자로 선정된 AK캐피탈과 5000억여원 수준에서 막바지 가격협상 중. 한보철강이 팔리면 부도 전에 진 빚 6조7902억원의 채무는 채권단이 탕감하는 조건이다. 은행 및 국가경제에는 엄청난 부담을 안긴 셈.
한보철강 근로자들은 멈춰선 공장도 다시 돌리고 해고당한 동료들을 다시 불러모아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한보철강은 부도 이후 3차례의 정리해고를 통해 부도 전 3090명의 직원을 645명으로 줄였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5배 넓이인 제철소를 지키기에는 적은 인원이다.
A, B지구로 나뉜 한보철강 제철소에는 4개 공장이 있다. 이 가운데 A지구의 봉강공장만 가동 중이고 A지구 열연공장은 수지가 맞지 않아 98년 설비가 멈췄다. B지구의 2개 코렉스 공장은 공정 69%에서 공장 건설이 중단된 상태.
신승주 차장은 “AK캐피탈이 A지구 열연공장을 다시 돌리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어 500여명의 근로자들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요즘 노사협의기구인 한가족협의회 사무실에는 퇴사한 직원들의 연락이 부쩍 늘고 있다.
이성만 한가족협의회 대표(36)는 “한보철강 근로자들은 국가경제에 누를 끼친 데 대해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며 “회사가 빨리 정상화돼 다시 떳떳하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진〓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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