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희덕/˝나, 떠날라우…˝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33분


올여름은 비가 와도 너무 온다는 생각이 들 무렵 우리 집에도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연일 쏟아지는 비에는 도심의 아파트도 버텨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와 보니 곰팡이는 무서운 속도로 천장을 잠식해 버렸다. 걸레로 닦아보기도 했지만 수마가 남긴 시커먼 얼룩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곰팡이가 지닌 정서적 환기력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어서 거기 앉아 있으면 내 삶이 하루하루 음습하게 잠식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공기 중에도 왠지 곰팡이균이 떠다닐 것 같아 집에 정나미가 떨어져 가는데, 마침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미련 없이 이사를 서둘렀다.

▼수해에 고향 등지는 농심▼

물론 이번 수해로 집과 논밭을 비롯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수재민들의 고통에 비하면 천장에 핀 곰팡이쯤이야 하찮은 얘깃거리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농촌의 수재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피해복구 자체를 포기하고 고향을 등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의 일부가 침수된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집이 형체도 없이 쓸려가고 논밭이 자갈밭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며 무슨 엄두를 내어볼 수 있을 것인가. 누가 그들을 향해 농촌을 지켜달라고 말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이농의 역사는 오랜 상처들을 간직하고 있다. 일찍이 시인 이용악이 ‘낡은 집’에서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 이웃 늙은이들은 /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고 뼈아프게 노래했던 것처럼, 식민지시대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낯선 북방의 땅을 찾아 나서야 했다. 또한 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나타난 이농현상은 우리 사회의 계층적 경제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 인구 중 농가인구 비율이 1961년에 56.3%였던 것이 1995년에는 10.8%로 감소했고, 현재는 8%에 불과하다는 통계만 보아도 도시 집중 현상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 후로 인구가 집중되는 만큼 우리 사회가 이룩한 성장의 혜택은 도시 중심, 서울 중심으로 분배되었고 농촌은 노동력의 부족뿐 아니라 성비나 연령의 심각한 불균형을 겪으며 늘 소외된 땅으로 남아 있었다.

이번 수해지역 분포만 보아도 도시보다는 농촌이나 산간지역에 주로 집중되어 있다. 재해방지 시설이나 복구 우선순위 역시 도시 중심으로 되어 있었다는 증거다. 그런데 자식들을 다 도시로 보내고 성치 않은 몸으로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지켜오던 노인들마저 이 기회에 도시의 자식들에게로 가야겠다고 말한다. 또한 획일적인 도시를 떠나 다른 삶의 대안을 찾아 귀농을 시도했던 사람들 역시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를 보며 농촌에는 가망이 없다고 다시 도시로 돌아올 궁리를 하고 있다.

이전의 이농이 식민 통치나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발생했다면 이번에는 자연재해로 인한 이농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토록 수많은 농민이 무너져 내린 집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물이 휩쓸고 간 상처 때문만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농촌에 강요해 온 여러 가지 불평등과 그로 인한 박탈감 속에서도 마지막으로 버텨오던 마음의 기둥이 터진 물꼬를 통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시장 개방이라는 먹구름에 이어 인재에 가까운 수해까지 당한 채 들판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막막함을 도시 사람들이야 어디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농촌붕괴 보고만 있을 셈인가▼

이제라도 정부와 온 국민이 나서서 이 쓰러진 농촌의 기둥을 일으켜 세우지 않는다면 기본적인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식량자급률이 30%를 밑도는 현실에서 농촌의 문제를 시장경제의 논리로만 해결하려는 발상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올여름의 수해는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더불어 농촌과 공동체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텃밭에 다녀오는 길에 물이 빠진 논에서 흙투성이가 된 벼를 일으켜 세우는 농부들을 보았다. 한 포기라도 건져보겠다고 땀을 흘리는 그들의 얼굴에는 수심의 그늘이 깊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들판을 지키려는 그들마저 고향을 등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서 마지막 참호를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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