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23>양화진(楊花津)

  • 입력 2002년 9월 12일 17시 44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 145 외국인묘지 부근 절두산 일대의 옛 모습이다. 지금은 절두산(切頭山)이라 부르지만 그 시절에는 잠두봉(蠶頭峯) 또는 용두봉(龍頭峯)이라 했다. 강가에 절벽을 이루며 솟구쳐나온 산봉우리가 누에머리나 용머리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절두는 머리를 자른다는 뜻이다. 고종 3년(1866) 병인 1월에 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이 곳에서 처형하면서 절두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일대가 천주교 성지가 됐지만 본래는 양화나루가 들어서 있어 서울과 양천 사이에 물길을 이어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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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나루가 설치된 것이 언제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김포 인천 쪽에서 서울로 들어오자면 이 나루를 건너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므로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조선 태조 3년(1394) 이후에는 이 나루의 효용이 매우 커졌으리라 생각된다.

세종 32년(1450)에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한림학사 예겸(倪謙)이 한강에서 뱃놀이 대접을 받던 중 이곳 잠두봉 양화나루에 들러 이런 시를 남겨놓았다.

‘한강의 묵은(오래된) 나루 양화라 하네, 좋은 경치 찾아 정자 지으니 곁에는 물가, 떠나가 닿는 돛단배 아득히 멀고, 기러기 울음소리 모래밭에서 인다.’

이 시로 보면 세종 때에 이미 잠두봉 아래에 양화나루가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즈음에 벌써 경치 좋은 이 잠두봉 일대는 태종의 제7왕자인 온녕군 정(溫寧君 程·1397∼1453)이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겸이 올라가 쉬었던 정자도 온녕군 집 정자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온녕군의 손자인 무풍정 이총(茂豊正 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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