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1주년인 그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영남대 강연에서 “미국에 안 갔다고 반미주의자냐. 또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말한 것은 여러 면에서 부적절했다. 시기도 그랬고 내용도 그랬다. 그는 곧바로 “말을 하고 보니 반미주의자는 좀 그렇다.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라면 우리 국익에 큰 손해를 끼칠 것이다”며 한 걸음 물러섰지만, 우리는 이 점이 더욱 당혹스럽다.
노 후보가 젊은 학생들이 가득 찬 강연장 분위기에 취해 불쑥 ‘반미’ 얘기를 꺼냈다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얼른 말을 주워담았다고 해도 사려 부족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그는 이날도 ‘나는 본래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 여러분들이 알아서 생각하라’는 식의 화법을 구사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는 지난 주말 한 사회단체 강연에서도 “개인적으로 서울대를 없애는 것에 찬성한다”고 말한 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신문에 크게 실리기 때문에 없애겠단 말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인 적이 있다.
이런 식의 화법은 듣는 이를 조롱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노 후보는 말을 가려 해야 한다. 얼마 가지 않아 주워담을 말이라면 아예 삼갔으면 하고, 정말 해야 할 말이라면 분명히 했으면 한다. 정치지도자의 말이 가벼워 바람에 날리듯 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지금 노 후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말의 안정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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