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배종대/정몽준 왜 뜨나

  • 입력 2002년 9월 12일 18시 47분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정몽준 의원이 대통령선거에서 2자대결을 할 경우 정 의원이 이 후보를 6.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선에서 정 의원은 어떤 형태로건 태풍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는 누구인가?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울산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3선, 현대중공업 고문 등이 그의 주요 이력이다. 정치인보다는 축구와 관련된 체육계 인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특별한 정치적 경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원내에 지지기반도 없다. 국회에서 그는 3선 내내 ‘나홀로’였을 뿐이다. 이런 그가 갑자기 뜨는 이유가 무엇일까? 순전히 월드컵 4강 덕분으로 보기에는 시민의식이 개운치 않다.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 반영▼

DJ가 정권을 잡은 후 치러진 2000년 4·13총선의 의석분포는 한나라당 133석, 민주당 115석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1년 10·25 재·보선에서 3개 지역구 한나라당 싹쓸이, 2002년 6·13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호남지역 3곳과 제주도 1곳만 건지고 나머지 11곳에서 참패, 그리고 지난 8·8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11 대 2로 다시 한나라당에 완패하였다. 한나라당은 처음보다 6석을 추가하면서 139석으로 과반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2석이 줄어들어 113석이 되었다.

이 결과는 민주당의 집권 5년에 대한 국민의 중간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지금 민주당은 과거의 실정(失政)을 겸허히 반성하고 야당 할 각오를 하는 것이 도리다. 5년 뒤 민심을 돌려 재집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민의 ‘최후심판’을 피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민경선’이라는 잔치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을 ‘정치적 쇼’의 들러리로 만들고, 같은 내용에 포장만 바꾸는 신당창당으로 다시 국민의 눈을 가릴 요량이다. 국정을 함께했던 집권당으로서 자기 반성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양당구도 정국에서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죽을 쑤었으면 다음 정권은 당연히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야 옳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입에 들어온 떡도 삼키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병풍(兵風)이 공작정치의 표본이라고 치자. 지난 대선에서 이미 써먹은 카드이고 공소시효도 지났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얼마 전 불거진 ‘원정출산’ 역시 병역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정서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총리서리 두 사람을 인준에서 보기 좋게 부결시켜 다수당의 힘을 한껏 과시하였다. 기준은 ‘도덕성’이었다. 국민의 한나라당 선택을 적극적 지지의 표시로 받아들이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당에 대한 불신의 반대급부인 측면이 크다. 국민은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고, 그 가능성이 ‘정몽준’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정 의원이 제3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은 곧 우리의 허약한 정치기반을 그대로 반영한다. 오죽했으면 대선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에 정당을 새로 만들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그 책임은 전적으로 한나라, 민주 양당이 져야 한다. 평생을 정치를 위해 몸 바친 사람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조 섞인 물음을 한번쯤 던져봄직도 하지 않은가.

민주당은 5년 동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즉시생(死卽是生)의 각오로 새 출발을 다짐해야 한다. 공당(公黨)으로서 허구한 날 남의 허물이나 캐내는 네거티브 전략에 목숨을 걸고 앉았을 일이 아니다. 이 점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정 의원에 대한 비난성명부터 띄울 것이 아니라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와 같은 국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대통령감을 배출할 수 있는 풍토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대권만 보지말고 국민을 보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해야 한다. 감동은 ‘진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간 옥살이를 하였으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하였다. 자기를 그토록 탄압한 백인에 대한 증오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협상의 파트너로 하여 결국 흑인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더 집권할 수 있었지만 후임자에게 깨끗이 물려주고 퇴진하였다.

정치는 ‘힘’ ‘술수’가 아니라 국민을 감동시키는 방법으로 하여야 한다. ‘표’는 부산물일 뿐이다. 눈앞에 ‘대권’이 아른거려서는 그 방법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국민’과 ‘역사’를 보기 바란다. 대한민국은 이런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배종대 고려대 법대 학장 jdbae188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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