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상처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 ´하얀시계´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49분


◇하얀시계/김현숙 지음/334쪽 8500원 Human&Books

노란 책표지를 들추니 바로 마주치는 한 줄의 문장, ‘긴 잠을 자고 있는 모든 이에게…’. 1989년 단편 ‘골고다의 길’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등단 후 10여 년에 걸쳐 발표했던 작품들과 미발표작 ‘피서지’ 등 10편의 글을 모았다.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지닌 친정 어머니의 반대로 어렵사리 결혼한 희연은 남편 경석의 고착된 ‘고향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경석의 해외연수로, 구정을 맞은 희연은 혼자 시댁을 찾아 간다.

시댁 식구들은 희연을 반기지만 여전히 타인처럼 서먹하기만 하다. 구정 저녁, 희연은 시동생 한석의 노동으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얻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골고다의 길)

혜선은 꼭 20년간 몸 담은 교사생활을 마쳤다. 활력을 잃어가는 맥빠지는 기분이 더 이상 그를 학교에 머무를 수 없게 한 것이다. 사직서를 내고 오던 날, 혜선은 캐나다의 현 선생에게 긴 편지를 쓰며 십여 년전 이맘 때를 생각한다. 느닷없이 내려 온 초등학교 교사 감원 조치. 인원이 할당됐다는 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혜선은 옆 반 총각 선생과 ‘풍기 문란’으로 모함을 받는다. 이 때 나이든 자신이 물러나는게 옳다고 현 선생이 사표를 낸다. (하얀 시계)

소리없이 흐르는 물처럼, 작가의 글은 잔잔하다. 그러나 물결없고 투명한 그 속을 응시해 보면, 어디선가 긁힌 생채기가 있다. 작가는 그 생채기를 깊게, 오래 만진다.

문학평론가 정호웅씨는 “김현숙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상실의 공동(空洞),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 인물들은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연민에 가득 차 물결치듯 흔들리는데 그 따뜻한 흔들림이 상실과 상처의 인물들을, 그들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상실과 상처로 아픈 독자들을 감싸 안는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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