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아빠’라는 한 독자는 이렇게 썼다. 본보 13일자 문화면(A19면)에 실린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읽고 동아닷컴에 올린 독자 감상에서다.
그는 “여기는 아침, 직장입니다”라는 단 한 줄로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을 표현했다. 육중한 철모를 눌러 쓴 군인이 무전기에 대고 “여기는 백마고지!” 하고 외치는 것보다 더 비장한 전장 분위기다.
또 다른 한 아버지는 “대학생 딸의 책상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더니, 이걸 본 딸이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펑펑 울더라”고 했다. 아버지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았다면서.
▷무엇이 이 땅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모든 이들을 울게 하는가.
피로와 일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라는 머리 셋 달린 용과 싸우는 아버지, 손수 모범을 보이라는 속담에 남몰래 콤플렉스를 느끼는 아버지,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고 날마다 자책하는 그 아버지를….
이 글에서 아버지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여태껏 바위인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여린 모습을 발견하고 뒤늦게 가슴이 미어진다. 갈수록 경쟁력만 강조해대는 글로벌 사회,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도 ‘부자 아빠’가 아닌 탓에 울 장소조차 없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우한 시대다.
1996년 나온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는 외환위기가 터진 97년을 전후해 불어닥친 명예퇴직 칼바람을 타고, 2000년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구조조정의 광풍을 타고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전국을 ‘아버지 신드롬’에 몰아넣었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작자 미상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는 세계화의 미명 아래 돈과 능력으로만 인간을 평가하는 세상을 낮은 음성으로 비판한다. 사람 사는 게 그게 다가 아니잖아.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여기 있잖아 하듯.
▷우리의 아버지들은 지금 외로운 거다.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할 때마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버지 신드롬이 불거진다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은 잠시 못들은 척하자.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어, 힘들고 지쳐도 내색하지 않고 짐을 나눠 지지도 못한 채 견뎌온 아버지가 아닌가. 겉으론 크나큰 느티나무여서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있지만 그의 가슴은 이 순간에도 가을 겨울이다.
오늘만큼은 따뜻한 미소로 그동안 아버지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와 위로를 전해 보자. 아버지가 있기에 우리가 이만큼 된 것이므로.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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