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각광받는 종목. ‘그 때’가 되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요즘엔 예전과 달라졌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종합대회가 열릴 때쯤이면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왔기 때문이다. 29일 개막하는 2002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경기대회 4연패에 도전하는 여자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관심도 예전에 비해선 현저하게 줄었다.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을 이끄는 ‘노장 4인방’을 통해 여자핸드볼의 현실과 희망을 들어봤다. 김현옥(28), 김은경(28), 허순영(27·이상 대구광역시청), 허영숙(27·제일화재). 서른을 목전에 둔 이들 ‘4인방’은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따낸 주역으로 아직도 여자핸드볼의 기둥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옥의 훈련’으로 불리는 서키트트레이닝을 마친 13일 점심때 만난 이들은 “핸드볼의 희망을 찾기 위해 꼭 우승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핸드볼 미래가 어둡다는데 왜인가?.
△김현옥(이하 옥)〓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열심히 훈련한뒤 금메달을 따내면 보람을 느꼈는데 요즘엔 그런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 관심을 못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이기 있는 종목이 따로 있다. 금메달을 따면 뭐하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김은경(이하 경)〓핸드볼팀의 훈련량이 가장 많다.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 엄청난 훈련을 소화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항상 관심은 인기종목이다. 그저 우리끼리 만족하고 만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허영숙(이하 숙)〓가장 중요한 게 돈이다. 지원이 거의 없다. 88서울올림픽, 96애틀랜타올림픽 등이 끝난 뒤에는 그나마 탄탄한 지원을 해줬다고 들었다. 그런데 요즘엔…. 사실 유니폼도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다.
△옥〓하루에 최소한 세 벌 이상의 훈련복이 필요하다. 다른 인기종목은 각종 업체에서 박스로 갖다 줘 한번 입고 버린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우리는 할인매장이나 동대문에 가서 훈련복을 따로 사다 입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허무하고 가슴이 아프다.
△경〓우리가 실력이 없어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인정하겠다. 구기종목중에 우리만큼 성적을 내는 종목이 어디 있나. 우린 이제 핸드볼을 그만둘 때가 돼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후배들이 불쌍하다.
△허순영(이하 영)〓이 모든 게 우리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미국에선 핸드볼이 비인기 종목 아닌가.
△숙〓사회 분위기도 우릴 외면하고 있다. 때가 되면 찾아오고. 다른 종목이 금메달을 따내면 인터뷰도 쇄도하고 각종 방송에도 출연한다. 당연히 국민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는 금메달을 따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옥〓IMF이후 실업팀 절반이 해체됐다. 그때 유망주들이 대부분 운동을 그만뒀다. 우리가 아직까지 대표팀의 주축으로 남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다. 후배들이 핸드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후배들이 핸드볼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긴 힘들다.
△영〓우리 땐 ‘헝그리 정신’으로 훈련했다. 열심히 훈련하고 그 성과에 만족하고…. 하지만 요즘 후배들은 그렇지 않다. 조금만 힘들어도 그만두려고 한다. 사실 핸드볼을 하는 것보다 다른 아무 것이나 하는 게 돈을 더 많이 번다.
△숙〓우리가 10년이 넘게 핸드볼에 매달려 왔는데 대기업 초봉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 지금 시작하는 선수는 어떻겠느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까?.
△숙〓현역인 우리가 해결할 뚜렷한 방안은 없다. 우리야 열심히 훈련해 좋은 성적을 내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후배들이 운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윗분들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팬들도 핸드볼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옥〓우리가 현재 후배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든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금메달을 따내지 못하면 지금보다도 더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고 지원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핸드볼의 현실이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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