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언론에 실력행사▼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현실정치에 대해 논평하는 이유는 국민의 지적 변별력을 높이는 데 일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정치 경쟁력을 높여보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논평자의 논리와 증거보다는 편가르기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안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은 일관성이 없다며 기회주의자로 매도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은 아직 정상적인 민주정당 체제를 갖추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관되게 한 정당만 편드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정당인이라 해도 막무가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자당이 하는 모든 일을 옹호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편가르기가 판을 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지적 변별력이 낮기 때문이다. 변별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모든 색깔이 흑과 백으로만 보인다. 가령 고래는 물에서 살고 지느러미가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에게는 물고기로 보인다. 하지만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보면 고래를 포유류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고래를 포유류라고 하면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그런 주장에는 분명히 무슨 정치적 음모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렇게 되면 객관적 논평은 사라지고 정당의 대리인들만 나서 편가르기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계몽된 국민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변별력과 판단력이 부족한 국민이 정치의 주인이 되면 민주정치는 우매한 군중이 지배하는 중우정치로 흐르게 된다.
사회의 변별력과 판단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논평이 풍부해야 한다. 이런 역할을 수행할 책임은 당연히 언론과 정당에 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공정성은 고사하고 사실보도라는 기본 책무에서조차 끊임없는 시빗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정당은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편가르기의 원조이다. 건전한 여론의 형성을 담당해야 할 언론과 정당이 오히려 편가르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원래 철저히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서로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같은 사건을 보아도 계층과 성, 자기가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갈등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가운데 가능한 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문화를 만들어 국민 스스로가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쉽지는 않다.
최근 한나라당이 MBC의 병역비리의혹 보도와 관련해 ‘신보도지침(?)’을 내려보냈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한나라당의 유감표명으로 잡음은 일단 봉합되었지만 ‘MBC 스페셜’과 관련된 갈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MBC의 모든 프로그램의 출연을 거부하는 바람에 방송이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특정신문의 인터뷰를 거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정 신문이나 방송을 비판하는 것은 소비자의 불매운동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공인이나 공당이 취재나 출연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국민 알권리 침해 우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정치권이 독자나 시청자의 수준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과 정당, 논평가가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면 국민은 변별력을 높일 기회를 갖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여론시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론이 단기적으로는 비합리적으로 흐를 수 있지만 결국에는 진실이 승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소수의 사람을 영원히, 모든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언론에 실력행사를 하기보다는 사회적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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