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①]웃으면 복이와요

  • 입력 2002년 9월 23일 15시 03분


《한국 전통문학과 민속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왔으며 이 분야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온 김열규 교수(인제대·국문학)가 해학과 익살의 비판을 통해 웃음의 숨통을 트는 칼럼을 주2, 3회 연재합니다. 최근 ‘고독한 호모디지털’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등의 저서를 펴낸 김 교수는 허위와 위선에 칼침을 놓거나 고된 인생을 달래주는 웃음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소문(笑門) 만복(萬福) 래(來)’라고 했지만 그건 웃기는 소리다. 말짱 헛말이다. 도통 ‘웃는 문’이 흔하지 않으니 복이 오다가 말고 뒷걸음질할 지경이다. 소문은 소수고 ‘빈문(嚬門)’이 대다수인 게 지금 이 나라 몰골이 아닌지 모르겠다. ‘빈문’의 빈은 ‘빈축’(嚬蹙)의 빈이다. 찡그린 꼴, 문드러진 호박 꼴이 곧빈(嚬)이다. ‘빈문 만복 거(去)’, 그게 우리 사회가 짓고 있는 형색(形色)이다.

TV에 자주 내미는 얼굴일수록 웬 벌레 씹은 꼴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뉴스 시간의 머리쯤에 등장하는 주연급의 단골일수록 그나마 자리가 높고 벼슬이 큰데 정비례해서는 소태 씹은 안색이기 마련이다. 그런 인물을 보고 있으면 나라가 온통 ‘빈문’일 것 같아서 보는 사람 얼굴도 덩달아 우거지 꼴이 된다. 빈(嚬)의 얼굴이니 국민의 빈축을 사서 마땅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제발 TV 방송국 앞에 ‘소문 만복래’라고 써 붙이기 바란다.

뭔가 꽈배기 같은 과자를 잘못 먹은 건지 목에 탈이 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는 말했다.

“내 목 탈은 말이야, 음식 꼭꼭 씹어 먹으라는 어머니 가르침 안 따르다가 당한 거지 뭐!”

우리는 이런 농을 공식 자리에서 하는 나라님을 본 적이 없다. 웃음이 작고 적은 사회, 그건 ‘소맹(笑盲) 사회’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어디든 상관없다. 공식 모임일수록 노한 건지 뒤틀린 건지 빙충맞은 건 지 도통 분간할 수 없는 얼굴들로 미어진다. 큰 벼슬의 취임식 정도 되면 초상집이야 할까마는 초상집 이웃집 정도는 되기 알맞은 분위기다.

웃음은 사람과 사회의 기(氣)요 활기다. ‘GNPL’, 이건 말하자면 ‘국민 웃음 생산 지수’의 약자(?)인데 끝머리의 L은 웃음을 의미한다. 지금 한국은 ‘웃음의 저개발 국가’다. 그러니 국민의 긴들 얼마나 쪼고랑 바가지일까?

‘잘 먹고 죽으면 때깔이 곱다’고 했듯이, 잘 웃으면 생명의 때깔이 고울 텐데, 참 안타깝다. 웃음은 비판이다. 병든 정신의 수술에 쓰일 메스다.

“모스크바 시민이 언제 맥도널드 가게 앞에 줄을 안 서게 될까?”

“언제는 언제? 다들 고기 먹기를 포기했을 때지.”

이건 그 지긋지긋한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지고 난 다음, 모스크바 시민들이 내뱉던 농이다. 구 소련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체제의 무능에 대한 시민의식 차원의 비판이 익살과 뒤엉켜 있다.

이 연재는 시민들의 활기와 비판을 위해 왕창 왕창 웃음을 내 쏟을 것이다. 해서 연재가 진짜 ‘소문 만복래’하는 소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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