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진승현 게이트’ 수사과정에서도 국정원이 16대 총선 때 진승현씨를 통해 여야 정치인 10여명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에 앞서 99년 6·3재선거 직전에도 국정원의 선거관련 보고서가 문제된 일이 있다.
정권이 바뀌고 명칭이 바뀌어도 정치에 관여하는 정보기관의 나쁜 버릇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정보기관의 정치 불관여가 천명됐지만 얼마 가지 않아 집권세력은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를 슬그머니 묵인하거나 조장했다. 은밀하게 활동하면서 막강한 정보력을 갖고 있는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 유혹은 집권세력에 마약이나 같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하자마자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 금지를 다짐했으나,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국정원이 정국현안과 관련한 ‘현안 대응자료’를 청와대와 여당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홍역을 치렀다. 그 뒤에도 정치 관여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올 5월 김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권노갑씨는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현직에 있을 때 수시로 정보를 보고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보기관의 정치 관여는 이처럼 권력자 주변에 ‘파리떼’가 끓도록 해 권력의 사유화와 동시에 부패를 촉발하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들 비리에 정보기관원들이 끼어든 경우가 많다. 특히 정보기관의 선거 관여는 선거의 룰을 흐트러뜨려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대선은 더욱 그렇다.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의 정치 불관여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기 위해서라도 16대 총선 개입 의혹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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