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중국 부자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15분


청빈이 유난히 강조되어온 우리나라에서 ‘돈 많이 버세요’라는 덕담이 쓰이기 시작한 건 요즘의 일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구정(舊正)때 주고받는 대표적인 인사말이 ‘궁시파차이(恭禧發財·돈 많이 버십시오)’일 정도로 중국인들의 이재(理財)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다. 외양보다 실속을 중시하는 이들의 관습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인 거부(巨富)가 배출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전 세계 화교(華僑)가 보유한 유동자산이 90년대 중반에 이미 2조달러에 달했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화교 자본이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최근 중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 신흥 갑부도 양산되고 있다. ‘타임’지 최근호는 중국의 신흥 갑부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중국 항저우에 1000만달러를 들여 백악관 건물과 똑같은 집을 지은 사람의 얘기를 소개했다. 1999년에는 600만달러로 중국 내 부자 50위 안에 들 수 있었지만 작년에는 50위 부자의 재산이 1억1000만달러였을 정도로 중국 부자의 재산 규모는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나라에서도 인간의 소유 욕망과 성취 의욕을 자극해 경제적 동기를 부여하는 자본주의적 사고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북한의 신의주 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직에 네덜란드 국적의 화교를 임명하고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화제다. 재산이 75억위안(약 1조2000억원)으로 중국에서 두 번째 부자라는 양빈(楊斌) 어우야그룹 회장이 주인공이다. 국가의 운명을 건 모험이라 할 경제특구의 총책임자 자리에 자수성가한 외국인을 데려다 앉힌 북한 지도부의 선택도 놀랍지만, 그 자리를 선뜻 수락한 양 회장의 담력 또한 보통 수준은 넘어 보인다. 양 회장은 엊그제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신의주를 홍콩으로 만들기 위한 청사진의 일단을 내비쳤는데 그 내용이 환상적이다.

▷양빈 회장이 중국 상인의 핏줄을 물려받은 신흥 거부라면 신의주는 최인호씨의 소설 ‘상도(商道)’에도 나오는 의주 상인의 맥을 이어받은 전통적인 상업도시다. 상재(商才)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들이 힘을 합해 조성해나갈 ‘신의주 경제특구’의 앞날이 궁금하다. 신의주가 양 회장의 장담처럼 금융 제조업 상업 관광 등에서 동북아의 중심이 될지, 또 하나의 실패한 나진-선봉에 그치고 말지는 전적으로 이들이 하기에 달려 있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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