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 진입이 115년, 스웨덴이 85년이나 걸렸는데 우리는 19년 밖에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같은 급격한 사회의 고령화는 갖가지 문제점을 동반한다.우리 사회가 노인문제에 대비할 자세를 갖추기도 전에 이미 당면한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우리의 노인 정책은 과연 어디에 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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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노인의 24시〓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춘석(金春錫·68)씨. 2년 전 아내를 여의고 둘째 아들 부부와 함께 사는 그는 오전 5시반경 일어나 아파트 근처 근린공원을 찾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같은 연배의 노인 10여명과 함께 산책을 하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집에 돌아와 아침을 먹고 신문을 뒤적이고 나면 고민이 시작된다. ‘하루를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나.’
어제는 구청에 가서 무보수 자원봉사나 일거리를 알아봤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0년 이상을 공사장, 중소 기업, 야채 시장에서 보낸 그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은 의외로 찾기가 쉽지않다.
집에서 TV를 보고 잡지를 읽으니 낮 12시가 가까워온다. 점심을 대충 떼우고 복지관에 들렀다. 주부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 건강 강좌가 열려서 자주 찾는 곳이다. 마침 노인 건강을 주제로 한 강연회가 있어서 자리를 앉았다가 상담을 마치고 나니 오후 4시.
다시 아파트 근처 근린공원에 갔다. 자신과 마찬가지 신세의 노인 5, 6명이 모여 앉아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서 대통령 선거를 화제로 삼고 있다. 저마다 맘에 둔 후보를 자랑하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한명씩 자리를 뜬다.
김씨는 맞벌이인 아들 내외, 초등학생 손녀와 함께 저녁 7시반경 식사를 하고 TV를 보다가 10시 반경 잠자리에 들었다. 할 일 없는 하루였지만 몸 성히 지낸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빈약한 노인 대책〓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노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는 노인이 47%나 됐다. 경제활동을 하는 노인 인구는 29%이지만 대부분이 자영업이나 농업 어업 축산업이고 기업체의 임직원이나 전문 직종을 가진 비율은 3.9%에 그친다.
대부분의 노인이 퇴직 이후에 일다운 일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노인의 재취업을 지원하는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취업알선센터, 고령자 인재은행, 취업정보센터 등 많은 민관 기관이 있지만 규모가 영세하고 전문성이 부족하다. 기관당 근무자가 평균 2, 3명. 보건복지부 산하의 노인취업알선센터는 구직자와 구인처에 대한 전산 정보도 연계되지 않는다.
대한은퇴자협회의 주명룡(朱明龍·57)회장은 “노인의 경험을 계속 활용하기 위해 정년이 되더라도 퇴직시키지 않는 대신 임금이나 직급을 낮추는 ‘임금 피크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갈 곳 없는 저소득 노인〓전국적으로 요양시설의 보호가 필요한 장애 노인은 78만여명으로 파악되지만 이들을 돌볼 공공 양로원이나 공공의 유료 또는 무료 요양시설은 296곳으로 극빈 계층 2만2500여명만이 보호를 받고 있다.
민간 노인시설은 보증금이 1억3600만원에서 7억8800만원, 월 이용료가 33만∼230만원 수준이라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다.
노인 질병도 대책 마련이 필요한 부분. 노인의 86.7%가 관절염 요통 신경통 고혈압 등 장기간 치료와 요양을 필요로 하는 노인성 만성질환을 갖고 있지만 생활보호대상자를 제외하고는 일반 노인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만만치않아 병원을 찾는데 부담을 느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으로 노인정책자료집을 잇따라 발표해 온 이원형(李源炯·한나라당)의원은 “시혜성 노인정책에서 벗어나 범정부적 차원의 ‘노인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 민간 사회복지단체를 망라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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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령화가 다른 선진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직접적인 이유는 평균 수명의 연장과 출산력의 저하 때문이다.
평균 수명의 연장은 과거에 비해 건강한 노인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직장 경험이 풍부하며 사회 활동에 참여하려는 욕구가 과거의 노인 계층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면 향후 노인복지정책의 방향은 건강하면서 경험이나 기술이 풍부한 노인 계층이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쪽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단기간 또는 시간제 고용을 늘리거나 자영업 종사를 지원해 주거나 자원봉사와 노인평생교육 같이 사회참여의 기회를 확대해 줄 수 있는 정책이 중요한데 현재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지역 사회 시니어클럽’(CSC) 활동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적극적인 사회활동 참여를 지원하기 위해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60∼70대의 노인 계층이 비교적 건강하다면 80대 이후의 노인 계층은 대부분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 역시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후기 노인계층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허약하므로 질병에 걸리기 쉽고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크며 특히 치매 환자가 많다.
따라서 만성 질환이나 부상 사고 등으로 일상 생활을 자립적으로 하지 못해 가족이나 타인의 간병수발을 받아야만 하는 장애 치매노인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또 하나의 노인 복지정책의 방향이다.
鮮于 悳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보건학 박사
▼선진국에선▼
유엔은 올해 4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제2차 세계 고령화 회의’를 개최하고 ‘마드리드 고령화 국제행동계획’을 마련해 회원국이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에 대응해서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 시행토록 권고했다.
국제행동계획은 △노인과 발전 △노년까지의 건강과 안녕 증진 △노인에게 능력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환경 확보 등 3개 분야 18가지 과제를 설정하고 세부적으로는 113개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은 오래 전부터 노인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설정하고 대책을 마련해 왔다.
일본이 2000∼2005년을 시행기간으로 하는 ‘신 골드플랜’은 노인 취업을 적극 지원해 노후 생활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골자.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연령을 제한하지 못하고 노인을 고용한 기업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2000년에는 ‘개호(介護)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행동에 장애를 느끼는 노인의 일상 생활을 돕는 사회보장제도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 가입자가 절반을 부담한다.
호주는 기업이 노인을 채용할 때 보조금 지급 등 인센티브를 주고 연령을 이유로 해고할 때는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노령 유족보험’가입을 의무화해 은퇴한 직장인이 매달 퇴직 전 급여의 40%를 받도록 하고 ‘의료보호(Medicare)’제도를 통해 65세 이상 노인의 입원비를 60일간 지원(800달러까지는 본인 부담)한다.
1883년 세계 최초로 사회의료보험을 실시한 독일은 95년부터 ‘케어 보험’을 도입해 노인의 질병 치료를 지원하는데 현재 60세 이상 노인 170만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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