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범신/이해 안되는 서울과 평양

  • 입력 2002년 9월 26일 18시 56분


그것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추석맞이 남북교향악단 합동연주회가 열리는 평양의 봉화극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평양시민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남쪽 KBS교향악단과 북쪽의 조선국립교향악단 멤버들이 무대 위에 섞여 앉아 ‘아리랑’을 합동 연주하는 걸 봉화극장 현장에서 평양 시민들과 함께 들으며, 나는 몇 차례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꿈같은 광경이었다.‘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라는 혁명공약을 외고 살던 젊은 날에, 나는 평양 사는 사람들은 모두 색안경을 끼고 있거나 드라큘라처럼 이빨이 길게 나고 붉고 붉은 망토를 걸치고 있을 거라고 곧잘 상상하곤 했었는데, 그 평양에서, 남북교향악단이 아리랑을 함께 어우러져 멋진 하모니로 연주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듣자니, 꿈같을 수밖에 없었다.

▼천박한 物神…끝없는 우상화▼

평양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대동강 보통강을 끼고 있는 자연경관도 그렇거니와 철저히 계획대로 개발된 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고 수양버들 늘어진 녹지대는 드넓었으며 인도 또한 쾌적했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되었다는 광복거리는 10차로 도로와 녹지분리대 및 궤도 전차로를 합하면 도로 폭이 무려 100m에 이른다.

“남조선에도 이만한 도로가 있습니까?”

안내원이 자못 자랑스럽게 물을 때, 우리 일행이 탄 차는 광복거리 끝에서 묵묵히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고 있었다. 도로는 드넓었으나 정작 오가는 차가 한 대도 없으니, 마치 화려한 종이꽃을 보는 듯 마음이 쓸쓸했다. 프랑스 파리의 그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는 개선문이나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붉은 글씨가 압도적인 영생탑, 거대한 혁명박물관과 밤에도 유일하게 대낮같이 불 밝은 김일성 수령의 대형 동상 등을 돌아볼 때도 그러했다. 1주일 동안 머문 평양의 고려호텔 21층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평양은 아름답긴 했지만 속이 텅 빈 듯 느껴졌다. 그곳엔 주체탑보다 더 높은 절대적 우상화의 낡고 허황한 깃발이 드높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서울도 보았다. 눈감은 채 바라본 서울은 너무도 꽉 차 있었고 너무도 광포한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치욕적인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기간을 겪고도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매일 수백t의 음식쓰레기가 쏟아져 나오고 수백만원짜리 외제 속옷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고급양주와 고급화장품의 수입물량이 세계 제일인 곳, 이혼율은 턱없이 늘고 돈 때문에 살인하는 사건도 특별할 것 없는 곳, 40대 남자의 급사율 또한 세계에서 최고라는 서울은, 마치 불가사리 같은 광포한 욕망의 팽창으로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기형적 구조를 하고 있었다.

평양에서 보내는 한 주일 내내 나는 천식이라도 걸린 것처럼 매일매일 가슴이 답답했다. 작은 반도의 나라 내 조국이 휴전선으로 나뉜 채, 남과 북에서 각각 전혀 다른 양상으로, 그 어떤 기형적 구조의 한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쪽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얼굴이고, 또 다른 하나는 끝없는 우상화를 통해 지탱되는 ‘우리 식대로’의 사회주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그 이념과 체제를 따질 것 없이, 기형적으로 광적이라는 점에선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나는 욕망에 의해 풍뎅이처럼 부풀어올라 광포한 속도로 달려가는 서울도, 절대권력의 우상화 그늘에 짓눌려 있는 평양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계사적으로 오늘날 한 민족이 겪어나가는 두 개의 양극화된 얼굴을 우리 조국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는가.

▼음악엔 南도 北도 없는데…▼

그리고 마침내 남북 합동연주회장. 음악은 남도 북도 없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없었다. 음악은 그것을 다 아우르면서, 그 너머에 있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비극적인 양극화를 통합해내고 천민자본주의의 그늘과 끝 간 데 없는 권력 우상화를 다 깨 박차고 함께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려면, 옳거니, 온 민족 구성원이 모두 음악인이 되면 되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못할 게 없다. 우리 민족처럼 우수한 문화적 전통과 재능을 가진 민족도 많지 않으니 모두 음악인 화가 시인의 인간주의로 돌아가면 앞으로 더 좋은 일이 더욱더 많아지지 않겠는가.

박범신 소설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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