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공적자금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해 국민 혈세(血稅)가 낭비됐다는 감사원의 특감 조치가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뒤 금감원의 한 간부는 억울하다는 듯 분통을 터뜨렸다. 외환위기 직후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금융기관들을 살리려고 ‘소방관’ 역할을 했는데 이제 와서 “‘물 값’을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라는 게 금감원 관계자들의 항변논리다.
그러나 금감원 관계자들이 국민의 혈세를 부실관리한 ‘책임’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감사원측의 ‘솜방망이 징계’를 받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불만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금감위가 98년 4월 부실자산파악을 엉터리로 한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영업을 재개토록 허용하는 바람에 3조원의 공적 자금이 허비된 대한종금과 나라종금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금감위측은 “유명 회계법인이 낸 보고서를 어떻게 믿지 않겠느냐”고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검사권과 감독권이라는 칼을 양손에 쥐고 있는 막강한 ‘금융검찰’의 변명으로는 너무 옹색하다는 느낌이다.
99년 1월 부실상태에 빠진 대전금고의 경영관리를 위해 파견된 금감원 직원들이 파견기간 중 눈을 뻔히 뜨고도 금고관계자들의 서류조작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도 ‘한심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당시 금감원 직원들은 금고 사장이 서류를 조작, 회사 예금을 담보로 수십 차례나 금융기관 돈을 빌려 썼는데도 까맣게 몰랐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감사원이 내린 ‘솜방망이’ 징계조치다. 잘못된 결정으로 국민의 혈세를 3조원이나 날린 금감위원장은 ‘앞으로 업무에 주의하라’는 통보를 받는 데 그쳤고, 대전금고를 부실관리한 업무 태만으로 1941억원의 공적자금을 까먹은 금감원 직원 4명은 감봉과 견책조치를 받았을 뿐이다.
여기에다 최근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며 공적자금 투입기업의 기업주와 부실 금융기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잇따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는 예금보험공사측도 금감원 관계자들의 책임문제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다. 한 관계자는 “상전(上典)인 금감원을 어떻게 고소하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금감원이 ‘성역’이란 생각마저 들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성역’은 누구나 납득할 만한 권위가 아니라 ‘잘못된 관행’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영해기자 정치부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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