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은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 대문호 위고와 뒤마의 탄생 2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금년 초, 위고 탄생 200주년 기념식상에서 위고의 절친한 친구였던 뒤마를 팡테옹으로 이장(移葬)한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뒤마의 ‘팡테옹 입성’이 사후 132년 만에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공화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뒤마의 이장식은 오는 11월 30일로 최종 확정되었다.
파리 중심의 생트 쥬느비에브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팡테옹은 병을 낫게 해 준 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루이 15세가 세운 교회였다. 얼마 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 수립에 공헌한 위인들을 기리는 장소’가 필요했던 프랑스 국민의회는 팡테옹의 용도를 변경, 이 곳을 ‘공화국 위인들을 위한 성전’으로 만들었다. ‘공화국 위인들의 만신전’이 된 팡테옹, 이 곳에 묻혀있는 문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00년 넘는 세월 동안, 팡테옹에 모셔진 위인들은 총 70 명. 이중 순수 문인은 위고(1885)를 필두로, 이상적 사회주의자이자 모랄리스트였던 졸라(1908),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던 말로(1996) 세 사람뿐이라고 하니, 뒤마는 팡테옹에 안장되는 4 번째 문인이 되는 것이다.
‘팡테옹 입성’으로 문인의 문학사적 위치가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국가가 공식적으로 한 개인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그를 국민적 위인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은, 문인에게도 큰 영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유언이나 가족들의 반대로 ‘팡테옹 입성’이 실현되지 않은 문인도 있다고 하니, 모든 문인들이 한결같이 그 곳에 들어가려고 안달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백년 넘게 고향 ‘빌레르코트레’에 평안하게 묻혀있던 뒤마 자신은 이번 ‘팡테옹 이장’을 흡족해 할까? 공화주의적 이상을 가진 작가였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였고 자유분방한 삶을 즐겼던 뒤마에게 얼음처럼 차가운 팡테옹의 지하 성소가 필자의 눈엔 왠지 불편해 보인다.
탄생 200주년에 거행되는 뒤마의 팡테옹 이장식을 앞두고, 프랑스에서는 뒤마의 재조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파리 서점에 선보인 관련 서적들 중, 소설 형식을 빌어 뒤마의 일상을 기록한 ‘몽테크리스토 성’은 독특한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 무대는 파리 근교 포르-마를리(Port-Marly)의 숲 속 ‘몽테크리스토 성’, 뒤마가 직접 지은 성이다. 이야기는 1847년 10월 16일, 17일, 18일, 단 3 일 동안에 벌어진다. 이 시기는 7월 왕정 말엽이자 2월 혁명 전야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꿈꾸던 시절.
그렇지만, 이 책의 초점은 사회적인 측면보다는 ‘삼총사’의 작가로 부와 인기의 절정에 있던 45세 뒤마의 개인적 내면에 맞춰져 있다. 천재 작가 뒤마의 개인적 습성, 이기적이면서도 너그러움을 지닌 그의 양면성, 자유로운 사생활로 인한 개인적 번민들이 뒤마와 그를 찾은 방문자들의 대화 속에 녹아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은 후, ‘팡테옹 입성’을 위해 두 달 뒤 무덤 속에서 다시 걸어나와야 하는 뒤마의 심정을 한번쯤 헤아려보면 어떨까. 망자는 말이 없으니 그 속내야 알 길 없지만.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joonseo@worldonline.fr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