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뒷모습이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는 바로 그 진실성 때문이다. 요란한 화장으로 얼굴의 주름을 감추고, 번쩍이는 넥타이핀으로 부(富)를 드러낼 순 있을지 몰라도, 휘어진 등은 세월을 숨기지 못한다.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고개를 돌린 얼굴을 즐겨 그렸던 것도 이처럼 뒷모습이 드러내는 삶의 진실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배를 밀고 있는 포르투갈 뱃사람들, 옷을 갈아입는 패션 모델, 벌거벗은 아이들의 엉덩이 등 각양각색의 뒷모습을 통한 삶의 진실 찾기다. 미셸 투르니에는 긴 시간의 통찰을 통해 얻어진 두께있는 시선을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 53장을 통해 매혹적인 글로 풀어냈다.
서로의 허리에 손을 두른 어린 두 소녀의 뒷모습과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두 소년의 뒷모습은 우정의 본질을 드러낸다(‘우정’). 우정의 비밀은 배타적 결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에게 등을 돌리는 방식에 의해 그 본질을 뚜렷이 드러낸다는 것을….
땅에서 벼와 보리를 거둬 들이는 것이 천직인 인도의 농부. 그러나 비쩍 마른 그의 뒷모습과 힘겹게 쟁기를 끄는 소의 앙상한 등뼈는 나무 쟁기를 사형 집행 도구처럼 느끼게 한다 (‘왜?’). 가리는 체 하면서도, 사실은 앙큼하게 엉덩이를 주목시키는 발레의상 튀튀의 유혹!(‘튀튀’).
투르니에는 사진 속에서 그 이상의 사회적 의미도 찾아낸다. 바지를 접어 올리고 치마를 살짝 들어올린 채 바다에서 수줍게 끌어 앉고 있는 남녀를 보며 투르니에는 “저 남녀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수영복의 표면적은 그걸 가진 사람들의 재산에 반비례하는 법. 이 때문에 아주 큰 부자들은 개인 해변에서 아예 벌거벗고 헤엄친다.
공들여 땋은 뒷 머리칼에서는 ‘애교의 함정’을 찾아낸다. 나 자신은 절대 볼 수 없는 뒷머리에 신경을 쓴다는 것은 오로지 당신을 위함이다. 바다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째서 바다가 각 문화권에서 종종 모성으로 빗대어 지는 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상이다.
이 사진집은 사람의 뒷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물뿌리개를 양손에 든 늙은 정원사의 뒷모습을 담은 ‘채소밭 예찬’의 주인공은 정작 정원사가 아닌 바로 ‘정원의 뒷모습’인 채소밭이다. 정원사 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이끼 낀 난간은 이 채소밭이 한 때 아름다운 귀부인과 멋진 신사들이 거닐었던 어느 지체높은 분의 정원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진의 매력은 우리에게 낯익은 모습들을 문득, 낯설게 느껴지게 하는데 있다. 이 책은 무심히 스쳐지나갔을 법한 소소한 일상의 뒷모습들을 통해 너그럽고 든든하고, 아름답고 쓸쓸한 ‘뒷모습의 진실’들을 곱씹어 보게 한다.
원제 ‘Vues de Dos’(1993년).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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