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수도권, 텅 빈 지방▼
지방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수도권은 그 자체로서도 극도로 혼잡한 상태에 있다. 수도권의 난개발과 부동산투기 문제는 국가적 재난으로 대두된 지 오래고, 교통혼잡과 물류 비용의 증가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국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비의 67%를 수도권에 쏟아 붓고 있어도 수도권의 연간 교통혼잡비용은 10조원이 넘는다.
그간 우리나라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한마디로 생색내기였다. 겉으로는 수도권 억제와 지방육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의 투자실적 중 지방투자계획의 추진율은 27.5%에 그쳤다. 국토의 균형발전은 지난 30년간 국가정책의 기조를 이루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갈수록 꼬이고 있다. 이제 과감한 정책적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수도권집중 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은 실효성 있는 지방산업 육성책에서 찾아가야 한다. 이제는 수도권이나 지방 할 것 없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지 못한 산업은 살아 남을 수 없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산업이 특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지방의 특화산업에 대한 육성책은 정책의지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국가정책에 의해 건설된 텅빈 지방공단들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지방 스스로가 선택한 특화산업단지에 관련 공공기관을 비롯한 연구·교육기관, 그리고 전원적 주거기능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른바 패키지도시(package city)의 건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재 수도권에 입주해 있는 기업조차도 지방의 해당 특화단지로 가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 때에야 비로소 수도권 과밀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지방의 산업과 교육 문화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여기에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 과학 연구시설과 관련 산업이 집적되어 있는 대전에 과학기술부를, 국가공단으로 건설 중인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에 보건복지부를, 해양수산업의 집적지인 부산에 해양수산부를, 그리고 농업생산지의 중심도시인 광주에 농림부를 이전하는 결단만 내릴 수 있다면 수도권 과밀과 국토 불균형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신 행정수도의 건설은 30조원 이상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통일을 대비해서도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있어야 할 줄 안다. 중앙부처를 어느 한 지역에 집중해 이전하는 것도 구시대적 접근방식으로 이해된다. 2001년 7월 정부대전청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방식은 ‘지역특성에 따른 지역별 분산’이 57.6%의 지지를 얻은 반면 ‘동일지역 집중배치’는 38.0%의 찬성을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정부과천청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지역특화전략에 따른 지역분산 이전’ 지지가 67.9%인 반면 ‘대전과 같은 동일지역 내 집중이전’은 30.0%의 찬성에 불과했다.
▼국가적 결단 필요▼
수도권 과밀과 국토 불균형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중앙부처의 지방이전은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신 행정수도의 건설이나 어느 한 지역에 중앙부처를 집중적으로 이전하는 식의 고착된 사고는 넘어서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다. 낙후된 각 지역의 경제회생을 위한 실행력 있는 정책으로 중앙부처의 지방이전을 추진하길 바란다.
황희연 충북대 교수·도시공학·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정책위원장 hwang@cbu.ac.kr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