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파업 움직임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이긴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통상적인 임금줄다리기 차원을 넘어 서울시가 버스요금 인상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 따라 사용자측이 단체협약을 파기한 것이 원인이 됐기 때문.
그런데도 서울시는 “버스노사와 계속 대화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왜 이렇게 됐나〓3월 교착상태에 빠진 버스노사 임금협상 때 서울시가 요금 인상을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은 것이 빌미를 제공했다.
시는 당시 ‘요금 조정이 필요한 경우 운송원가 실사용역 등을 거쳐 3·4분기 안에 시행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지방노동위원회에 보내 중재에 나섰고 노사는 이를 믿고 기본급 7.5% 인상에 합의했다.
그 뒤 시는 한양대경제연구소에 요금실사를 의뢰해 110원의 인상 요인이 있다는 답을 얻었으나 신임 이명박(李明博) 시장은 “연내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이렇게 되자 버스운송사업조합은 지난달 16일 시가 요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3월 합의한 임금인상안을 파기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노조에 통보했고 15일부터 교통카드 사용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그러자 노조는 1일 단위노조 대표자 회의를 통해 11일부터 총파업을 선언한 것.
▽파업 가능성은〓서울시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시는 요금실사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17개 업체, 85개 노선에 대한 수입금 실사를 벌이고 있으나 버스업계는 “요금 동결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작”이라며 실사를 거부해 진척이 없는 상태. 버스요금 인상 문제와 맞물려 시가 추진하고 있는 버스운영체계의 전면 개편작업도 사용자측의 불만을 낳고 있다.
A운수 이모 대표는 “노선 준공영제를 도입해 버스노선을 시가 소유하면 그동안 수백억원을 투자한 운수업자들은 뭐가 되느냐”며 “교통체계를 개편하려면 59개 회사가 갖고 있는 8100대의 버스를 서울시가 모두 떠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조측은 요금 인상에 관계없이 3월22일의 노사합의와 5월28일 조인한 단체협약을 내세워 임금 인상을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두손 놓았나〓파업이 임박했는데도 서울시는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사용자측이 노조를 부추겨 파업을 유도함으로써 시를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
음성직(陰盛稷) 시 교통관리실장은 “수입금 실사를 벌여 요금인상 요인이 있으면 올려주겠다고 수 차례 얘기했는데도 실사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용훈(朴用薰)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비록 전임 시장의 약속이라 해도 시기(3·4분기)를 넘기면서까지 요금인상 요인을 검증할 명분은 없다”며 “뻔한 수순을 애써 외면하면 시민들의 불편만 가중될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서울시는 파업에 대비해 지하철 운행시간을 연장하고 전세버스를 추가 투입하는 것말고는 파업을 막을 대책이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시내버스 파업 관련 일지▼
△2월21일: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3월28일 전면 파업 선언
△3월11일:서울버스노조, 쟁의발생 신고
△3월20일:서울시, 지방노동위원회에 버스요금 인상 서면 약속
△3월22일:노사 임금협약 타결
△4월8일:서울시, 한양대 경제연구소에 요금실사 용역의뢰
△8월6일:이명박 서울시장, 연내 버스요금 동결 선언
△9월4일:건설교통부, 각 시도에 요금조정 약속 이행 권고
△9월13일:서울시, 시내버스 개편안 발표
△9월16일:서울버스사업조합, 10월15일부터 버스카드 거부 및 임금협약 백지화 결의
△9월24일:서울버스노조, 승무 거부 및 사용자 고발 결정
△10월1일:서울버스노조, 11일부터 전면 승무 거부 결정
△10월7일:서울버스노조, 파업 찬반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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