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 조정 '희망의 銅'

  • 입력 2002년 10월 2일 19시 42분


"이제야 빛이 보입니다."

2일 부산 강서구 강동동 서낙동강 조정경기장. 여자 싱글스컬에서 9분52초34로 동메달을 차지해 한국 조정에 첫 메달을 선사한 이은화(22·장성군청)의 얼굴표정은 아주 밝았다. 비록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하진 못했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뜻함에 겨운 표정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그에게 조정은 뼈아픈 좌절을 딛고 일어서게 도와준 '희망'이었다. 배구선수였던 이은화는 98년 2월 부산 덕명여상을 졸업하고 후지필름에 입단했지만 IMF 여파로 후지필름이 해체되는 바람에 단 4개월여만에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뭘 해야할지 막막해 방황하다 대학입시를 준비했지만 쉽지 않았다. 1년6개월여를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조정 국가대표였던 오빠 이호씨(26·해군장교)가 "넌 조정하면 잘하겠다. 한번 해보지 않을래"한 게 조정에 입문하게 된 동기. 특별히 할 게 없었던 이은화는 곧 노를 잡아 열심히 젓기 시작했다. 오빠가 부산동아시아경기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던 사실도 동기부여가 됐다. '나도 하면 되겠다'는 작은 가능성을 본 것.

그러나 시작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실업에서 "너무 오래 놀았다"라며 받아주는 팀이 없었다. 이때 다시 오빠가 도와줬다. 대표팀 시설 감독이었던 장성군청 박영환 감독을 소개해줬다. 박 감독이 큰 키(1m78)에 탄탄한 체격(73㎏)을 갖춘 그를 본뒤 곧장 "한번 해보자"고 해 99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조정에 입문하게 됐다.

이은화는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땀을 흘렸다. 단체종목과 달리 개인종목을 하다보니 투자하는대로 실력이 향상됐다. 하루 4시간 이상을 노젓는데 투자했다. 계속 실력이 느는 재미도 쏠쏠했다. 2001년 7월 전국대회에서 3등, 그해 10월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하며 국내 1인로 우뚝서게 됐다. 결국 태극마크도 달았다.

이은화는 "이제 시작입니다. 조정이 제 인생에 의미를 던져줬는데 열심히 해야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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