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향숙 박사(53)는 언젠가 생명공학기술이 본궤도에 오르면 지금의 정보기술혁명처럼 엄청난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 때를 위해 정부가 새로운 첨단 생명공학 분야의 과학자를 길러내고 기초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유 박사는 자신이 단장을 맡은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유전체연구단은 21세기에 국제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과학기술부에서 추진중인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의 하나이다. 특히 인간유전체연구단에서는 한국인의 질병, 특히 난치병을 유전자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단의 단장은 1년에 100억씩 10년 동안 연구비를 자신의 계획에 따라 재량껏 사용할 수 있다. 유 단장이 이런 대형 국책프로젝트의 단장에 응모하게 된 계기는 남다르다. 자신이 소속된 생명공학연구원이 대학 교수들로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소리에 자극 받아 연구원도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
유 단장은 “사업단의 35개 팀을 조직화하고 인화 단결시키는 데 대학교 때 읽었던 논어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남을 아끼고 부모를 공경하며 여유를 가지고 중용을 지키라는 내용을 읽으면서 조직을 이끄는 포용력을 배웠다는 것.
유 단장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 초청됐던 한 강사가 “국가 발전을 위해 과학을 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듣고 과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특히 생물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약학을 전공해 쥐를 갖고 항암제 실험을 했지만 과정을 모른 채 결과만 아는 현상학적인 연구에 만족하지 못했고,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치기 위해 미국 유학 길에 올라 분자생물학을 공부했다.
유 단장은 청소년들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간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에서는 한국인의 난치병을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반을 닦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사업단에서는 한국인의 위암·간암 세포로부터 3만 여종의 유전자를 선택해 이 가운데 1천 여종의 유전자가 위암·간암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위암·간암 관련 유전자를 모아 DNA진단칩을 만들면 기존의 조직 검사 없이 정확하게 암을 진단할 수 있다. 곧 이와 관련된 1세대 진단칩을 만들 계획이다. 나아가 이 사업이 끝나는 시점에는 한국인 위암·간암의 진단과 치료에 의한 생존율을 현재 20%에서 60% 수준까지 끌어올릴 전망이다.
유 단장은 “10년 동안 한국인의 난치병에 관련된 유전자를 연구해 국내 생명공학 분야의 씨앗이 되고자 한다”고 연구자로서의 꿈을 밝힌다.
사업단을 운영하던 초기에 1만여개의 유전자를 구입, 사업단에서 DNA칩을 자체적으로 제작해 국내연구자에게 보급한 일이 최근 좋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 사업단의 연구는 또 다른 결실을 맺을 것이다. 즉 한국인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신약의 밑바탕을 제공하고, 생명공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손에 잡히는 비전을 선사할 것이다.
▼유향숙 박사는▼
어릴 적 기독교합창단에 응모해 합격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경기여중 2학년 때 학교에 초빙된 강사의 말을 듣고 음악가의 꿈을 접고 과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름방학 숙제를 할 때 용어 하나 하나를 백과사전에서 일일이 확인했을 만큼 생물 과목을 좋아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 약대에 진학했고 학부 때부터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일을 즐겼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라 피츠버그대학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귀국한 이후 줄곧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인연을 맺고 있으며, 1999년에는 과학기술부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의 단장으로 선정됐다.
1999년에는 국내학자로는 드물게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포주기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됐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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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깊게 읽은 책 : 공자의 논어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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