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자들은 현 국제체제를 미국의 패권체제로 간주한다. 패권국인 미국은 국제체제에서 정부 역할의 일부를 수행한다. 막강한 군사력과 세계적 공공재를 앞세워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는 대표적인 경제 공공재다. 이들은 미국 달러화와 더불어 세계 경제질서를 유지한다. 군사 공공재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미일동맹, 한미동맹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이러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민주 정부는 기간산업시설을 건설하고자 할 때 공청회와 같은 절차를 거쳐 민심을 수렴한다. 민주 정부는 여론의 지지를 얻어 탄생된 공공재를 국민이 애용하고, 인기있는 공공재를 많이 제공할수록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도 세계 여론에 입각한 공공재를 제공할 때 그 공공재의 인기가 높을 것이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9·11테러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테러리즘의 공포를 느꼈다. 핵무기, 생화학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에 대한 인식도 한결 높아졌다. 미국 패권체제 하에서 미국이 테러리즘을 근절시키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는 일을 주도하는 것 역시 미국이 제공하는 공공재의 일부로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쟁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세계 여론은 부정적이다. 최근 33인의 저명한 미국 국제정치학자들조차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 수행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9월26일자 ‘뉴욕타임스’에 게재했다.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공공재는 인기가 없게 마련이다. 그런 공공재를 제공하는 정부나 패권국의 정치적 수명이 어떨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김우상 객원 논설위원·연세대 교수·정치학 kws@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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