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현대사에 대한 검정 합격도서가 현 정권은 찬양하고 문민정권에 대해서는 비방했다고 해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교육부는 다시 수정을 지시하겠다고 했는데 그 결과 현대사의 기술이 공정해졌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치적 선전도구 이용 우려▼
중고교 교과서는 과거 정권홍보용으로 이용되었으며, 유신정권 하에서는 대부분의 사회과 교재가 국정교과서화 됐다. 당시의 국정교과서는 초등 사회, 중 고등 국사, 실업고 세계사 지리였으나 단일본 교과서는 중학교 사회와 사회과부도, 고교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이었다. 이 단일본 교과서는 실제로는 국정교과서였다.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마음대로 편찬했기 때문에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되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문의 자주성이 침범당했다. 유신시대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과서를 보면 유신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독재정권을 옹호했다. 이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은 권위주의에서 탈피할 수 없었다.
그 뒤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정교과서는 줄어들어 현재는 중등학교 국어 국사 도덕교과서만 국정이 되고 대부분은 검인정이 되었다.
국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권위주의 내지 독재국가이다. 교과서를 통해 사상을 획일화하고 정치적 선동을 일삼으며 민주적 다원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국정제로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유발행제나 인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국정교과서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초 중등교육법 제29조 제1항은 ‘학교에서는 국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거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검정 또는 인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초 중등교육법이 국가가 저작권을 갖는 국정교과서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헌법위반의 우려가 있다. 헌법재판소도 “국정제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어의 국정제가 합헌이라고 하나 위헌이라고 보는 반대의견도 있다.
교육의 내용을 결정하는 교과서 제도는 법률로 상세히 규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법 제29조 2항은 ‘교과용도서의 범위 저작 검정 인정 발행 공급 선정 및 가격사정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해 백지위임하고 있다. 이는 교육제도 법정주의에 위반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나아가 이 법 시행령 제55조에서 다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중복 위임하고 있다.
▼교육부 교과목 일방결정 안돼▼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이 국정도서의 종류를 한정하지 않고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교과목’으로 백지위임한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정부가 원할 경우 모든 교과용 도서를 전부 국정도서로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이라고 하겠다. 실질적으로도 정부가 모든 교육용 도서를 저작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하게 됨으로써 헌법이 요청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교육의 자주성,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것이다.
검정교과서도 교육부가 검열하고 수정을 지시할 수 있으며 합격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므로 국정교과서에 준하는 위헌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권이 바뀜에 따라 교과서 내용이 변경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국회와 정부는 국 검정교과서에 관한 규정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며, 국회가 통제할 수 있도록 ‘교과용 도서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교육법률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학생의 장래, 나아가 민주주의의 정책을 결정하는 교과서 편찬에는 국민의 참여와 감시가 필요하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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