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否認만 말고 입증하라

  • 입력 2002년 10월 6일 18시 16분


정부는 언제까지 남의 일인 양 방관만 하고 있을 건가.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이 당시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의 지시로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는데도 정부가 진상규명을 미루고 머뭇거리는 것은 옳지 않다. 국회의 국정조사든 특별검사든 마다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과 관련해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에게서 ‘청와대 한 비서실장이 하도 전화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엄낙용 전 산업은행총재의 증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 금감위원장이나 한 전 비서실장이 부인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 정권에서 차관급 고위공무원을 지낸 사람이 국회에서 정식으로 증언한 것인 만큼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들의 폭로성 발언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사자들이 그냥 말 한마디로 부인한다고 해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 자체를 국민이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끌고 가서는 의혹만 더 부풀릴 뿐이다.

엄 전 총재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직접 부당대출을 지시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시 청와대 한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밖에 없다. 김 대통령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 아랫사람이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까지 금융감독원 감사원 산업은행 등이 사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조사를 미룬 것도 대통령이 관련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문제는 이제 김 대통령과 현 정권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여지도 없다. 한 전 비서실장 등 관련자들이 일제히 부인한다지만 정부는 즉각 조사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부인만 하고 있는 관련자들의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책임이 있다. 조사결과를 김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 길만이 사태를 수습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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