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과 관련해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에게서 ‘청와대 한 비서실장이 하도 전화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엄낙용 전 산업은행총재의 증언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의 여부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 금감위원장이나 한 전 비서실장이 부인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 정권에서 차관급 고위공무원을 지낸 사람이 국회에서 정식으로 증언한 것인 만큼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들의 폭로성 발언과는 성격이 다르다. 당사자들이 그냥 말 한마디로 부인한다고 해서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 자체를 국민이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끌고 가서는 의혹만 더 부풀릴 뿐이다.
엄 전 총재의 말이 사실이라면 청와대가 직접 부당대출을 지시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당시 청와대 한 비서실장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밖에 없다. 김 대통령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 아랫사람이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까지 금융감독원 감사원 산업은행 등이 사실을 규명하지 못하고 조사를 미룬 것도 대통령이 관련되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문제는 이제 김 대통령과 현 정권의 신뢰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여지도 없다. 한 전 비서실장 등 관련자들이 일제히 부인한다지만 정부는 즉각 조사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부인만 하고 있는 관련자들의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책임이 있다. 조사결과를 김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그 길만이 사태를 수습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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