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학 강의에서 들었습니다. 당시 수강한 약학과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은 한국 경제의 발달 단계와 먹거리 습관의 상관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했죠.
“70년대 이전에는 먹고살기 힘들었다. 따라서 이때는 ‘배’로 먹었다. 배가 고파 무엇이든 먹었다.”
“현재는 ‘입’으로 먹는 시대로 볼 수 있다. 먹고 살만 하니까 다들 앞다퉈 맛있는 것만을 찾아 먹는다. 영양과잉으로 인한 질병들, 예를 들어 비만과 당뇨병 등이 건강을 더욱 위협할거다. 앞으로 더 소득수준이 좋아지면….”
새삼 묵은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당시 강의처럼 ‘배’에서 ‘입’을 지나 ‘머리’로 먹는 시대’가 됐기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마라톤 인구 등에서 보듯 건강은 소비 트렌드이자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았죠.
매장에서 살펴보세요. ‘건강’을 강조하는 제품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먹어도 살찌지 않는 식용유가 개발됐는가 하면 청량음료나 패스트푸드 업체도 저(低)칼로리 제품은 물론 천연 과즙을 섞거나 야채를 듬뿍 사용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고를 때 건강을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죠. 유통기한을 살피듯 식품 성분 분석표의 칼로리 수치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거죠.
따라서 식음료 업계도 건강음료, 건강식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면 시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위기의식도 눈에 띕니다.
사실 이런 풍조는 90년대 중반 잠시 나타났습니다. 1인당 소득 1만 달러 시대 진입 등 장밋빛 청사진으로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 건강은 소비의 주요 화두(話頭)로 등장했죠. 하지만 외환위기는 그 싹을 잘랐죠. 당시 몇몇 식음료 업체는 시대 흐름에 맞춰 제품을 개발하기도 했으나 결국 철수해야 했습니다. 요즘 제품 가운데 일부는 당시 등장했던 제품이라고 하네요.
소득수준과 먹거리가 서로 긴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쉽고 분명하게 정리한 교수님의 말씀이 새삼 떠오릅니다.
이헌진기자 경제부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