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도 “의장 말씀이니 깊이 생각해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회시정연설이 예정된 7일 오전까지도 김 대통령은 아무런 ‘연락’을 주지않았다. 청와대는 김 대통령의 불참에 대해 국회의장실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서야 부랴부랴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이 박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김 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평생 ‘의회주의자’를 자처해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총구’로 권력을 잡은 군 출신 대통령보다 국회 방문을 꺼렸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이 집권기간중 4회,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은 2회 시정연설을 했다. 그러나 자주 국회를 찾을 것 같던 김 전 대통령도 국회연설은 2회에 그쳤고, 김 대통령은 2000년 16대 국회개원 때 한차례 방문한 것이 유일한 ‘친정’나들이였다.
청와대측은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때 총리를 통해 대독시켜온 것은 ‘관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는 대통령이 법과 국민 위에, 그리고 국회 위에 군림하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잘못된 유산’이다.
과반의석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냉대’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관행은 분명히 깨져야 한다. 국민의 땀방울로 만들어낸 새해 예산안의 씀씀이를 직접 설명하는 것은 대통령의 기본책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은 총리임명동의안 처리가 계속 불발돼 9월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자 “국가신인도를 위해 반드시 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런 김 대통령이 불과 30여분이 안걸리는 국회행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더욱이 김 대통령은 박 의장이 대통령의 불참에 강한 불만을 터뜨리자 비서진에게 “박 의장에게 사전에 충분히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고 질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양해를 구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지 ‘국회의장’은 아닐 것이다.
윤영찬기자 정치부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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