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위서’까지 부인할텐가

  • 입력 2002년 10월 7일 18시 40분


서해교전 관련 정보 보고를 둘러싼 공방은 군인정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국방장관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첩보보고를 묵살했다고 주장하는 한철용 소장과 그 같은 주장을 부인하는 김동신 전 장관 가운데 한 쪽은 분명히 군인정신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한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경위서’까지 공개됐으니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곧 드러날 전망이다. 5679부대의 예하 부대장인 윤영삼 대령이 작성한 경위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이 5679부대의 보고내용 중 일부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한 소장이 ‘증거’ 차원에서 윤 대령에게 자필로 경위서를 쓰게 해 보관하고 있었을까 짐작하게 된다.

물론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아직 명백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드러난 증거들을 볼 때 평생을 바친 군문(軍門)에 대해 ‘내부고발자’가 되기를 자처한 쪽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한 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군인의 명예를 걸고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진실로 밝혀질 때 김 전 장관을 비롯해 국회에서 한 소장의 증언을 반박하는 데 급급했던 군 간부들의 군인답지 않은 처신은 문책되어야 한다.

한 소장은 서해교전 때 우리 군이 당한 피해가 수뇌부의 잘못된 정보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근저에는 ‘정치적 고려’가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군이 정치에 오염되면 본연의 국가안보 임무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서해교전이 과연 그 같은 사례에 해당되는지 진실을 밝힐 책임은 이제 국방부로 넘어갔다.

국방부는 이번 조사과정에서 ‘정치적 상황’을 결단코 외면하고 오로지 진실만을 밝혀 군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사건이 유야무야되거나 아니면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과가 왜곡돼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전체 군의 사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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