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편성권이 정부의 고유권한이라면 국민의 세금을 어떻게 쓰고 나라살림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국민의 대표에게 고하는 시정연설은 그에 수반된 최소한의 의무다. 정치와 국민의 거리를 좁히는 게 정치개혁의 요체라는 점에서도 시정연설은 마땅히 대통령이 직접 해야 한다.
국민을 상대로 국정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은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될 게 분명하고 여소야대 상황에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해야 할 것도 많을 텐데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꺼리는 것은 의회주의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혹 연설도중 야유나 소란을 우려한 것이라면 지도자로서의 도량에 문제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각제에 비해 국회의 정부견제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인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국회연설 의미는 더욱 크다. 굳이 외국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우리도 1988년 13대 국회(여소야대) 때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대독 관행을 이유로 드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이번 시정연설의 내용은 자화자찬과 함께 임기종료 후 실현여부가 불투명한 장밋빛 정책 나열로 시종했다. 김 대통령이 마지막 시정연설에서조차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실패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은 유감이다. 현대상선 거액대출 의혹이나 서해교전 사전징후 묵살의혹 등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국정운영의 난맥상에 대해서도 물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맥빠진 대독에다 알맹이 없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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