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식이라면 검찰은 나중에 중대한 자기모순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대출압력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명예훼손과는 무관하다는 이유로 압력을 가한 사람에 대한 처벌은 유보한 채 엄 전 총재만 무혐의처리하고 수사를 종결할 것인가. 반대로 대출압력을 밝혀내지 못하면 의문투성이인 대출경위나 사용처는 묻어둔 채 엄 전 총재만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것인가. 어느 쪽도 합당치 않다는 것을 검찰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검사 한명이 한달에 수백건씩의 일반 형사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서울지검 형사부에 이 사건이 배당된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 단순한 의혹제기 수준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증언과 정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진상규명을 위한 손쉽고 간단한 절차마저 회피하고 있어 국정조사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 사건을 ‘일개 고소사건’으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사건의 출발점은 대북(對北) 뒷거래 의혹이고, 핵심은 권력 실세의 압력 여부와 비정상적인 거액대출 그리고 아직도 베일에 싸인 쓰임새의 연관성이다. 그 중 압력 여부만 가리는 것은 ‘꼬리 자르기’나 ‘입막음’ 수사가 아니냐는 새로운 의혹만 키우게 될 것이다. 물론 수사는 진행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검찰의 진상규명 의지다.
본란에서도 거듭 강조했듯이 이 사건의 전모를 신속히 파헤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법적 장애도 없어졌으니 검찰은 당장 계좌추적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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