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 ´通法部´전락▼
우리나라에서 입법부의 이런 위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추진된 이래 입법부는 언제나 행정부를 보좌하는 ‘하위 파트너’의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입법부의 일부가 대통령에 의해 직접 지명되기도 했으며, 야당의 활동까지 정부기관에 의해 은밀히 조종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한다는 것은 정치학 교과서에나 있을 법한 주장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시정연설에 대해 행정부로서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예산안 제출과 연관된 시정연설은 1988년 13대 국회를 제외하고는 오랜 기간 총리가 대독해온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태가 부각된 것은 그동안 국회의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시정연설을 할 것을 몇 번 요청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에서 비롯된다. 문제가 불거지자 곧바로 양해를 구해 사태가 수습됐지만, 청와대로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우리 입법부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안고 있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민주주의 원리 가운데 중요한 것의 하나는 삼권분립이다. 삼권분립은 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눠 상호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집중 및 남용을 방지하려는 통치원리를 말한다. 이 원리는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행정부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원칙이며, 이때 특히 입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행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져 온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무한히 팽창하는 ‘국가의 일’은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행정부에 권력을 집중시켰고, 그에 비례해서 입법부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돼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적인 경향이 이렇다 하더라도 우리 입법부의 위상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더욱 초라하다는 데 있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란 수사는 입법부의 초라한 지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입법부의 올바른 위상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부의 변화가 중요하다.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법부(通法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권위주의 통치가 남긴 부정적 유산이다. 국정 전반에 대해 행정부로부터 소상히 보고 받고 이를 심사하는 것은 입법부의 당연한 권리다. 입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이 권리를 위임받은 기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정부는 입법부를 민주적 국정 수행을 위한 ‘생산적인 동반자’로 발상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싸움판´ 탈피 위엄 찾아라▼
더불어 입법부 자신도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입법부가 국가 중대사와 민생을 외면한 채 정략적인 정쟁만을 일삼는다면 그런 입법부를 존중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진정한 권위란 남이 세워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당성을 갖출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법이다. 정당성을 결여한 권위는 더 이상 권위가 아니라 군림하기만을 원하는 일방적 권력일 따름이다. 이 점에서 입법부는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스스로의 위엄을 되찾을 필요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프랑스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는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권력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고전적 삼권분립의 원리를 제시한 바 있다. 나누어지기를 거부하고 한 곳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갖는 게 권력의 본래 속성이다. 따라서 권력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 입법부의 위상은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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