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5…돌잡이 (11)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8시 02분


나는 조선 사람이 될 수 없고 이 사람들은 일본 사람이 될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 이해하고, 얼굴은 마주해도 눈은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산부와는 눈을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일본 사람보다 조선 사람의 아이를 받는 일이 많았다. 조선 여자들 사이에서, 난산일 때는 이나모리란 일본 산파를 부르면 산부나 아이가 무사히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평판이 나 있는 모양이다. 기쁜 일이다. 조선의 가정에서는 아기의 첫 생일 잔치에 아기를 받아준 산파를 모셔 정중하게 대접하는 풍속이 있다는데, 이렇게 이 두 손으로 받은 아이가 서서 걷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없는 기쁨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옷은 이 아이를 받을 때 입었던 옷이다. 소매를 걷어올리고 흰 옷을 겉에 입기는 했지만 출혈이 심했으니, 어쩌면 옷자락에 피 얼룩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부의 집에서 사람이 찾아올 때는 늘 한 시가 급하니까, 새벽이든 깊은 밤이든 진찰 도구가 들어 있는 왕진 가방만 들고 뛰어나갈 수밖에 없다. 남편이 여자답지 못하다고 투덜거린 적도 있지만, 젊었을 때부터 검은 옷만 입는 것은 피 얼룩이 눈에 띠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아기의 이름이 우근이라고 했던가? 눈 꼬리가 날카롭고 야무지게 꼭 다문 입, 마치 무사 차림의 인형 같은 생김이다. 내달에 태어날 손녀딸 의 자식은 남자애일까? 여자애일까? 우근이란 이름에서 우 자 하나를 받을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조용히 내리는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는다. 비에 젖은 사람은 이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덕이 많고 강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남자애면 우작, 우정, 달우, 백우. 여자애면 미우, 우녀. 이 형의 이름은 뭐였더라?

“이름이?”

“제 이름 말인가요?‘

“응.”

“이우철입니다.”

“글자는 어떤 자를 쓰는데?”

“비 우에, 철학 할 때 철 자요.”

“형은 우철, 동생은 우근, 정말 좋은 이름이다. 아버님이 박학하신가봐.”

이름은 허리띠와 비슷하다.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옷이 벗겨지는 것처럼, 이름으로 단단히 묶지 않으면 죽음의 신이 목숨을 거둬간다. 일본 사람이든 조선 사람이든 이름을 두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