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사건이란 40대 남성이 ‘친구와 술잔을 돌리다가 간염에 걸려 가정도 직장도 파탄 났다’는 유서를 쓴 다음 아파트 옥상에서 술잔을 돌린 친구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두 가지 사실을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우선 일반인의 간염에 대한 오해가 엄청나다는 것. B형 간염은 술잔을 돌리고 키스를 한다고 해서 쉽게 전염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침팬지에게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든 침을 음식에 섞어 먹이는 실험을 했으나 간염이 발병하지 않았다. 잇몸에 칫솔질을 ‘벅벅’ 해서 상처를 깊게 낸 다음 똑같은 실험을 했더니 간염에 걸렸다.
당시 연구진은 “투여한 침의 양은 큰 비커에 가득 담을 정도였다”며 “일상 생활에서 침을 통해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술잔 이론’이 그럴듯하게 퍼졌을까.
1970년대 내과의 원로 교수들이 술자리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한국인들은 왜 간염 환자가 많을까”에 대한 토론을 벌이다 나온 것이 술잔 이론이다. 80년대에는 정부가 앞장서 ‘술잔 돌리지 않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간염은 주로 혈액을 통해 전염된다. 97년 국군부산병원과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간염 환자를 입대시켰을 때 군대에서 간염에 걸리는 환자의 수가 간염 환자를 입대시키지 않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나 환자는 꺼림칙한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대전 사건은 간염 바이러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차별을 당하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정부는 2000년 ‘전염병 예방법 개정법률안’을 통해 B형 간염 보균자의 취업 제한을 금지했지만 사기업에서 차별은 여전하다.
심지어 사관학교나 특정 대학에서도 입학을 불허하며 요리사 영양사 간호사 등은 자격증을 따고도 취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간학회에 따르면 학교 급식 때 바이러스가 있는 아이의 식기 색깔을 다른 아이의 것과 달리 해서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경우도 있다.
필자는 지난해 20대 여성으로부터 “부모가 남자 친구의 간염 보균을 문제삼아 결혼을 받대한다”며 도움을 줄 수 없느냐는 편지도 받았다.
일부 회사에서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간염 보균자를 추후 발병할 것을 우려해 채용하지 않는다면 간암이나 폐암에 걸릴 수 있는 주당이나 골초도 뽑지 않아야 형평성에 맞다. 현재 취업하는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가운데 일부에게서 간염이 생길 10∼20년 뒤에는 간염 치료가 쉬워질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무지(無知)에 의해 200만명이 넘는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나 환자가 차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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