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 Park. 화장실(WC)을 연상케 하는 이 이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똥박사’로 통하는 수질환경 및 복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박완철 박사(47)의 영어 이름이다. 첨단기술을 다루는 연구소에서 똥에 매달리고 있다는 게 영 이상하기만 하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생활하수의 양은 1600만톤. 1년으로 치면 낙동강 2배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한 것은 사람과 가축의 배설물, 즉 똥이다.
“생활하수를 깨끗하게 정화해 다시 쓰면 웬만한 가뭄에도 농사용 물 걱정을 상당히 덜 수 있어요. 하지만 제대로 정화하지 않으면 전국토는 금세 분뇨 천지가 되겠지요. 과학자가 고상한 것만 찾다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박 박사는 1980년대 중반 한강 오염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되던 시기에 분뇨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연구원에서 대기오염 문제에 매달리던 박 박사에게 분뇨 정화조를 만들라는 새로운 지시가 내려진 것.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제가 촌사람이니까 냄새나는 연구를 해도 잘 버틸거라 생각했나봐요. 사실 똥 냄새는 제게 익숙합니다.”
박 박사가 만든 축산정화조는 전국 5천 농가에 보급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가격이 기존 정화조의 5분의 1 수준이면서 처리효율이 97%에 달하는 제품이었다. 시꺼먼 똥물을 수돗물처럼 맑게 만들었다.
폐수처리의 비결은 분뇨를 먹고사는 미생물에 있었다. 박 박사는 일본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밟던 시절부터 주말이면 일본의 화산 일대를 누비고 다녔고 귀국해서도 우리나라 전국의 산을 뒤졌다. 낙엽을 분해하는 미생물 가운데 능력이 뛰어난 종류를 찾으면 독성이 가득한 똥도 먹어치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7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찾은 쓸만한 미생물은 10여종. 이들이 현재 우리나라 분뇨처리장에서 터를 잡고 맑은 물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다.
많은 고생 끝에 얻은 미생물이니 그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죠? 미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자가 실험실을 얼마나 자주 들락거리며 자신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지 알고 있어요. 애정을 많이 쏟아야 텔레파시가 잘 통해서 미생물이 힘차게 자랍니다.”
박 박사는 과학자로는 드물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박 박사가 보급한 정화조 덕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안겨준 기술료가 10년 간 15억원에 달했다. 그 역시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기에 이르렀다. 또한 농어촌 오폐수 처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1년 한국공학한림원으로부터 ‘젊은 공학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환경벤처기업 바이오메카의 기술고문으로 활약하며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똥박사’라는 썩 유쾌해 보이지 않는 별명에 대해 “딴 짓 하지말고 한길을 가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인다”며 털털한 웃음을 던지는 박 박사. 앞으로 오염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쓰레기를 모두 자원으로 바꾸는 과학기술이 필요할 것이라며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모든 과학기술 전문가가 어우러진 멋진 오케스트라를 구성해야 쓰레기 없는 세상이 열리죠. 자기 분야에서 기초를 탄탄히 닦으며 준비하면 환경오염을 없애는데 기여하는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박완철 박사는▼
1955년 경북 상주 출생. 어린 시절 농사짓는 일을 평생의 가업으로 생각하던 부모님은 장남인 그가 집안 일을 책임지고 꾸려나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상주농장고등전문학교 농업과. 고등학교와 전문대학교를 합친 형태인 5년제 전문학교였다. 졸업 후 2년 간 농사를 짓다가 건국대 농과대학 3학년으로 편입해 이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일본 도쿄 농공대에서 박사후 연수 과정을 밟았다. 석사를 마친 뒤 198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들어갔으며, 현재 이 연구원의 수질환경 및 복원연구센터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0년 환경벤처기업인 바이오메카를 설립해 기술고문을 맡고 있으며 대규모 분뇨 처리장의 공정 개선 연구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2001년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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