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심규선/이웃 일본이 보는 3金

  • 입력 2002년 10월 13일 18시 25분


12일 저녁 관광차 한국에 온 일본인 친구와 서울 인사동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요즘 일본에서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문제가 최대 현안”이라며 “한국에도 북한에 납치된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납치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에게 “납치된 사람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는 사실에 일본인이 받은 충격과 슬픔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일본이 과거 일제강점기에 행한 한국인의 강제징병이나 징용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북한의 붕괴 가능성과 탈북자 문제, 한일과거사 문제 등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상당히 높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3김(金)에 대해서도 웬만큼 알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김종필(金鍾泌·JP) 자민련 총재는 3김 중 일본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인물이다. 유창한 일본어에다 모나지 않은 행동, 일본의 정계 거물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그는 한일간의 ‘마지막 정계 파이프’로 평가받는다. 김 총재만큼 일본을 잘 아는 거물정치인은 이제 없다는 뜻이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어 그렇기도 하지만 그는 올해만도 벌써 다섯 차례나 일본을 다녀왔다.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은 ‘가장 껄끄러운’ 인물이다. 그의 얘기만 나오면 상당수 일본인은 그가 95년 11월 한중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한 발언을 떠올린다. 그만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그지만 이제는 와세다대의 ‘특명교수’가 되어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4월 첫 강의 때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대통령 재임시절의 여러 가지 비화를 털어놓아 참석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은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3김 중 유일하게 존경도 받고 있다. 73년 8월 도쿄(東京)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과 남북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이 국제적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하나 특이한 것은 일본인이 3김 중 유독 DJ의 내정이나 국내평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대권을 잡아보지 못한 JP는 그렇다 치더라도 YS가 국내정치를 어떻게 했는지도 별로 화제가 되지 않는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간단히 말해 국내외의 평가가 김 대통령만큼 극명하게 엇갈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인 만큼 국내정치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만큼 의외의 결과에 내심 실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터져 나와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대북 4억달러 지원설과 노벨평화상 로비설, 공무원의 기강해이 등은 누가 책임질 일인가. 청와대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정치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심각한 지역편중 인사와 두 아들의 구속사건 등도 그렇지만 신뢰를 주지 못한 김 대통령의 내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유 중에는 한일관계를 개선시켰다는 항목도 들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의 국내정치와는 첨예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만큼 객관적이다. 그런 일본에서 김 대통령의 국내정치에 실망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에 대해 이 정부는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웃집의 평가는 먼 동네 사람의 말보다는 정확하다.

심규선 정치부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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