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기태/케르테스와 카터의 ‘초심’

  • 입력 2002년 10월 13일 18시 25분


지난주 발표된 노벨 문학상과 평화상 수상자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인생의 황혼까지 초심(初心)을 밀고 왔다는 것이다.

특히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73)의 문학상은 ‘초심을 잃지 않은 자에 대한 축복’이라 할 만하다. 그는 1944년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인간의 인간다움이 그처럼 참혹하게 부정되고 짓밟힐 수 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이 비극적 체험을 소설에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5세 때였다. 그의 첫 작품 ‘무운(無運·Fateless)’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975년이었다. 그의 나이 46세 때였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44세 때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니까 그보다 두 살이 늦은 나이에 그는 노벨상은커녕 작가로 데뷔한 셈이었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 중 가장 나이 먹어서 문단에 데뷔한 사람은 44세에 첫 작품 ‘파리 대왕’을 펴낸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으로 알려져 있다. 케르테스는 이 기록도 뒤집었다.

그는 ‘무운’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88년 ‘대실패’, 90년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등 아우슈비츠 체험의 연장선에 선 후속편을 잇달아 내놓아 끝내 ‘무운’ 3부작을 완성하는 집념을 보였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의 삶도 비슷하다. 그는 퇴임 후 ‘민주주의의 전도사’ ‘분쟁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사실은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미국은 세계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전임자인 제럴드 포드, 후임인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등이 퇴임 후 공식활동을 접었던 것과 달리 그는 제3세계의 자유 총선과 분쟁 종식을 위해 온 몸을 던졌다. 이는 대통령직에 관계없이 인간은 평소의 신념을 실천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한때 그를 실패한 미 대통령의 전형으로 꼽았지만 이제 그는 미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됐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온 한 아름다운 인생의 전형을 우리는 카터와 케르테스에게서 본다.

권기태기자 국제부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