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웅(張雄·64·사진)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농구 선수 출신인 그는 큰 키(1m90) 만큼이나 말투 또한 시원시원했다. 인터뷰 요구에 몸을 사리는 대부분의 북측 인사들과는 달리 그의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부산에 도착한 뒤 방송에서 ‘북 선수단은 하늘로, 응원단은 배로, 성화는 땅으로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북남의 교감과 분위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 중에 자원봉사자가 과로로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세계적으로 지금 한쪽에선 전쟁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분위기인 반면 부산에서는 북남이 한 마음이 되어 아시아경기를 마쳤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로 44개 참가국 가운데 9위에 그쳐 종합 4위 탈환에 실패했다. 첫 출전한 74년 테헤란대회에서 5위를 차지했고 이후 90년 베이징대회까지 줄곧 4위에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불만스러운 성적이다.
“전에 갖춰져 있던 주니어-유스-성인으로 이어지는 체육 저변 강화체제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탓도 있지요. 예전에는 동유럽 등에 선수단을 자주 보내 국제 경기 경험도 많이 쌓았는데 이제는 동유럽체제가 무너져 맞돈(현금) 딱딱 내야 갈 수 있어 힘이 듭니다. 경제가 개선되면 체육도 사정이 차차 나아지리라고 봅니다. 축구 마라톤과 체급 종목은 괜찮은데 기초종목인 육상 수영 등이 잘 안되고 있는 점은 남쪽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아시아경기에는 사상 처음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44개 전 회원국이 출전했다. ‘아시아를 하나로’라는 정신대로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북한이 처음 출전한 것도 대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땅에 전쟁이 나면 우리 민족은 모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 것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이 구체적인 실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북남 교류는 결코 책략이나 정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됩니다. ‘북이 우리한테 준 게 뭐냐’라든가 ‘10전 줬으니 10전 내놔라’식보다는 우리의 미풍양속인 상부상조 정신 아래 순수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는 “베이징에서 항공편으로 부산으로 오는데 항공사측에서 이코노미석이었던 우리 마라톤 선수들 좌석을 모두 비즈니스석으로 바꿔 주었다”며 “승무원들도 너무 친절해 ‘역시 우리는 같은 핏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장 위원은 북한의 스포츠 외교를 도맡고 있는 인물. 외국어에 능통해 76년 몬트리올올림픽부터 각종 국제대회에 북한 대표로 참석하며 입지를 넓혀 왔고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과 함께 IOC위원으로 선출됐다. 그는 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때 북의 한필화 선수와 남의 오빠 한필성씨 통화내용을 동아방송에서 생생하게 내보냈던 사실을 얘기하며 동아일보는 북한에 잘 알려져 있는 신문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우리 영화에도 나옵니다. 김(일성) 주석께서 무장투쟁한 보천보전투를 유일하게 쓴 신문이 동아일보 아닙니까. 당시 동아일보는 호외까지 냈는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모두 회수해 버렸다지요. 여운형 선생은 그 호외를 감춰 서울에 잠입했는데 그 내용이 영화에 모두 나옵니다. 북에서도 나이 든 분들은 동아일보를 다 좋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총칼에 저항해 인민의 사랑을 받았고 관록과 역사가 깊은 뼈대있는 신문이 아닙니까.”
그의 집은 스포츠 가족. 장 위원장은 10년 동안 농구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고 아내 역시 배구 대표 선수 출신이다. 또 막내아들(장정혁)은 이번 대회에 축구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했으며 둘째딸도 현역 배구 선수.부산〓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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