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경제▼
재정경제부 통계청 등 정부가 최근 내놓는 경제 관련 주요 지표들은 ‘회색빛’ 일색이다. 올해 초까지 상승세를 이어오던 경기지수 생산 소비활동이 모두 7, 8월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회복은 일시적인 대외 경제여건 개선과 재정확대에 힘입은 것이며 주변 여건이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까지 한다.
더욱이 세계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미국-이라크전쟁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등 대외여건까지 나빠지면서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내수는 하강국면, 수출은 명암 엇갈려〓올 들어 국내 경기가 불안한 대외환경 속에서도 완만한 회복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 소비 투자 등 내수(內需)가 좋았기 때문. 그러나 이제 내수가 국내 경기를 이끌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한 생산활동 증가율은 6월 5.3%, 7월 8.7%까지 올랐으나 8월에는 8.5%로 증가세가 주춤해졌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서비스업활동도 8월에는 7.9% 증가에 그쳐 7월의 9.5%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현재 경기흐름을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5월 정점(100.6)을 나타낸 뒤 3개월 연속 떨어져 8월에는 99.1로 100 아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경제가 짧은 회복 후 다시 침체로 돌아서는 ‘더블 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하나경제연구소의 곽영훈(郭泳勳) 연구위원은 “국내 경기는 지난해 8월을 바닥으로 회복세를 이어왔지만 올 6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진단하고 “하강국면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수출은 아직도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9월 수출은 140억2000만달러로 지난해 9월보다 12.6%나 늘었다. 주로 반도체(34.9%) 무선통신기기(30.8%) 컴퓨터(12.4%) 등의 정보기술(IT) 관련 제품의 선전(善戰)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최대시장인 미국의 경제 침체가 예상 밖으로 길어지고 미국-이라크전쟁으로 인한 불안요인도 잠복해 수출 호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소비자 체감경기 급랭〓재경부는 15일 내놓은 ‘최근의 경제동향’에서 올 들어 처음으로 기업경기전망 및 소비자기대지수 등 ‘체감(體感)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실물경기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지만 기업과 소비자들이 앞으로의 경기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기대지수(6개월 후의 경기에 대한 평가)는 6월 110.6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뒤 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내 9월에는 103.9까지 떨어졌다.
▽엇갈리는 경제위기 재발 가능성〓정부나 주요 민간경제연구소는 최소한 내년까지 경제위기 재발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권순우(權純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세계 경제가 침체 기로에 있고, 국내에서도 부동산 폭락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 위험성은 있지만 위기로까지 갈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모건스탠리 등은 한국경제가 내년에도 5%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운찬(鄭雲燦) 서울대총장 등 일부 경제학자는 최근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한국경제가 제2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제주체인 정부 기업 가계(家計)가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세계경제▼
올해 세계경제는 수치상으로는 지난해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계금융시장이 불안한데다 미국-이라크전쟁 가능성마저 높아져 앞으로 전망은 밝지 않다. 일각에서는 세계경제가 동반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와 재경경제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세계경제 회복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미국 경제에 불안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3월말 회계부정 사건의 여파로 주가가 폭락하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4분기(1∼3월) 5.0%에서 2·4분기(4∼6월)에는 1.3%로 떨어졌다.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면서 투자자들은 기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기업들은 신규 투자나 고용을 망설이고 있다. 8월 미국 산업생산은 8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소비지출은 7월에 전월 대비 0.8% 증가하는 등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특히 주택가격이 꾸준히 올라 주가 하락에 따른 영향이 소비에 파급되는 것을 막아줬다.
미국인들은 올 한 해 집값 상승으로 90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주택자산가치 증가는 1989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비지출마저 위축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각종 기관들이 내놓은 소비심리지수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과 유럽은 상황이 미국보다 더 나쁘다.
일본은 소비와 투자가 모두 부진한데다 수출마저 6∼8월 3개월 연속 감소했다. IMF JP모건 메릴린치 리만브러더스 등 주요 기관은 모두 일본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유럽은 산업생산과 수출이 줄어들 뿐 아니라 기업의 체감경기도 나빠져 경기회복을 자신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기준선인 2%를 웃돌고 홍수피해 등으로 재정적자 폭이 커져 경기부양책을 펴기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크전쟁이 터지거나 미국 경기가 침체하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계경제를 둘러싼 비관론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크전쟁이 나면 오히려 불확실성이 없어진다는 점 △금리만 크게 오르지 않으면 주택거품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 △소비자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낙관론을 펴는 전문가도 있다.
세계경제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 비교(자료:재정경제부) | ||
구분 | 비관론 | 낙관론 |
투자 | 기술부문 과잉투자로 투자회복 지연 | 설비투자 증가 반전 |
회계부정 여파로 투자자 신뢰 저하 | ||
소비 | 세계증시 동반 침체 | 저금리 및 주택경기 호조 |
주택거품 붕괴와 가계부채 증가 | 급격한 금리 인상이 없는 한 주택거품 붕괴 및 신용위기 가능성 없음 | |
전쟁 위험 | 소비 위축, 전쟁비용 과중 등으로 경기 침체, 디플레이션 발생 | 오히려 불확실성이 없어지고 유가 안정 |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전문가 판단▼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라크전쟁의 전개양상과 미국경제 향방이 앞으로 1∼2년간 한국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유가(油價)가 오르고 수출에 타격을 받는 등 한국경제에 곧바로 부정적인 영향이 온다는 것. 특히 전쟁이 길어지면 그 피해는 상상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이 전쟁 장기화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은 고(高)유가 때문에 소비와 투자가 줄어 세계경제가 동반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조종화(曺琮和)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미국의 통화정책이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그렇게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동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전쟁이 길어지거나 확산되면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경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許贊國)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은 “미국이나 중동지역 국가 모두 전쟁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장기전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쟁이라는 불확실성이 없어지면 소비와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 한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자극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전쟁과 같은 돌발변수를 제외한다면 미국경제의 회복 여부가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경제연구센터장은 “미국의 경기선행지수가 떨어지고 있어 대미(對美)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내년 상반기(1∼6월)까지는 어려움을 겪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최경수(崔慶洙) 거시경제팀 연구위원은 “정보기술(IT)산업의 불황으로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는 낮아질 것”이라며 “미국 경제의 영향도 있지만 한국 경제 내부적으로도 지난해부터 유지해온 경기부양정책을 유지하기 어려워 경제성장률이 약간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