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후드가 활약하던 때와 오늘날은 시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조폭들이 미화되고 있는 것은 이들의 어느 한쪽 측면만을 부각시킨 대중매체의 책임이 크다. 지난해 ‘친구’ 등 조폭 영화가 잇따라 성공한 데 이어 풍운아 김두한의 생애를 다룬 TV드라마 ‘야인시대’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면서 조폭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시청자에게 TV 보는 재미를 선사하곤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걱정된다. 의협심과 승부의 법칙 등 폭력세계의 가치관들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96년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됐을 때 폭력배를 흉내내는 청소년들이 크게 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적 있다. 얼마 전에는 영화 ‘친구’를 보고 같은 반 친구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싸움에서 이기는 법’ 등 폭력과 관련된 잔인한 내용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조폭들의 활동이 최근 권력과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와 비교되는 현상은 더 큰 우려를 자아낸다. 조폭들이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집단이기는 하지만 대형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층보다는 그래도 나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칫 더 나아가면 조폭이 뭐가 잘못이냐는 엉뚱한 논리로까지 비약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물론 이런 문제에서 우선적인 비판의 대상은 조폭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이라기보다 부패한 권력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몇 달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 권력층의 부정과 비리는 어떤 조폭 영화보다도 생생하게 법과 질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선한 악당’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조폭은 조폭일 뿐이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에 폭력을 부추기는 조폭 신드롬마저 확산된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힘이 약한 자는 더욱 살맛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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