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壓 卷(압권)

  • 입력 2002년 10월 17일 20시 19분


壓 卷(압권)

壓-누를 압 卷-책 권 簡-대쪽 간

榜-게시판 방 眉-눈썹 미 逸-빼어날 일

壓은 厭과 土의 합성자다. 厭은 본디 ‘짓누르다’는 뜻이었다. 무거운 것으로 짓누르면 답답하여 싫다.

그래서 후에는 ‘싫을 염’字가 되었다. 厭症(염증), 厭世主義(염세주의)라는 말이 있다. 壓은 여기에 土가 덧붙여졌으니 흙(土)으로 짓누르는(厭) 것, 즉 옷감 따위를 누르기 위해 흙(벽돌)을 사용한 형태다.

卷은 두 손(즉 卷에서 병부절을 제외한 부분)으로 어떤 물건을 말고(병부절·Roll)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卷의 본디 뜻은 ‘말다’다. 사람(사람인)이 다리를 꼬고(卷) 있는 모습이 倦(게으를 권), 손(手)을 말고 있는 것이 拳(주먹 쥘 권), 울타리(口)를 쳐 놓고 가축들을 꼼짝 못하게 해 둔 것이 圈(우리 권)자다.

그런데 卷은 후에 冊(책)을 뜻하는 글자로 轉用(전용)되었다. 옛날에는 종이가 없었으므로 竹簡(죽간·대나무쪽) 여러 개를 가죽끈으로 엮어 만들었는데 冊자는 바로 그 모습을 그린 글자다. 보관할 때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았던 데서 연유한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한 卷 두 卷으로 센다.

이처럼 卷이 冊으로 轉用되었으므로 ‘말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를 새로 만들게 되었는데 물건을 마는데 손을 사용했으므로 ‘손수’변을 덧붙여 ‘捲’자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卷이 책을 뜻하게 되고 부터는 시험의 답안지도 卷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시험답안지를 試卷(시권)이라고 한다.

옛날 科擧試驗에서 채점을 마친 답안지(卷)를 골라 壯元(장원), 榜眼(방안), 探花(탐화)라 하여 1, 2, 3등의 順位(순위)를 정하였다. 이 때 가장 훌륭한 답안지를 壯元用으로 골라 맨 위에 올려놓음으로서 다른 것을 누르게 했는데 그것을 ‘壓卷’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지금도 壓卷이라면 가장 훌륭한 작품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杜甫가 친구 韋濟(위제)에게 보낸 詩에 ‘贈韋左丞’(증위좌승)이라는 것이 있다. 후세의 시인들이 그것을 中國 詩의 壓卷으로 삼았음은 유명하다.

참고로 ‘第一’(제일)을 뜻하는 말에는 ‘白眉’(백미)도 있다고 했다(2001. 12. 7).劉備(유비)의 명 參謀(참모) 馬良(마량)에서 유래한 말로 5형제 중 그가 가장 뛰어났던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눈썹이 희었다하여 ‘白眉’는 가장 우수한 사람이나 作品을 형용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밖에 ‘逸品’(일품)도 같은 뜻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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