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28>빙천부신

  • 입력 2002년 10월 18일 18시 29분


빙천부신은 ‘얼음벼루에서 나무를 지다’는 뜻이다. 벼루라는 말은 낭떠러지 아래가 강이나 바다인 위태로운 벼랑을 일컫는 순우리말로 베리 또는 벼리라고도 한다.

벼루를 뜻하는 말이 우리 한자에 없어 ‘오를 천(遷)’ 자를 빌려 ‘벼루 천’이라는 독특한 훈(訓·뜻 새김)을 보태 써왔다. 한자가 우리 문자화한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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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겸재가 양천 현령으로 부임하는 영조 16년(1740) 겨울에 그린 것이 분명하다.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던 평생지기 사천 이병연이 이 해 동짓달 22일 겸재에게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가 이 그림 뒤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글월이 동어(凍魚·언 생선) 풍미(風味)를 띄우고 오니, 아침이 와도 밥상 대할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받들어보니 정무가 매우 바쁘신 모양이나 어찌 조금 참지 않으시겠습니까. 십경(十景)이 매우 좋아서 시가 좋기 어려울까 걱정입니다. 곧 벽에 걸어놓고 보겠습니다.’

다시 그림 곁에는 사천이 보낸 시를 겸재가 옮겨 적은 제화시가 있다.

‘층층이 얼어붙고 등에 나뭇짐 있어도, 올라오면 어려웠다 말하지 않네. 다만 걱정은 도성 안이니,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춥지나 않을까(層氷薪在負, 登頓不言難, 惟恐洛城裡, 曲房歌舞寒).’

겸재는 천지 사방에 눈이 가득 쌓인 어느 추운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한강가 얼음베리에서 백성들이 나뭇짐을 지고 오르는 위태로운 장면을 목격했던 모양이다. 아마 설경(雪景)을 즐기기 위해 소악루(小岳樓)에 나왔다가 내려다본 정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 올림픽대로가 지나는 가양동 219 일대의 모습일 듯하다.

강이 얼기 전에 틈틈이 물길을 이용해 강원이나 충청, 경기 산악지대로부터 나무를 실어다 물가에 쌓아놓았다가 이렇게 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가 몰아닥치면 땔감으로 이를 내다 팔기 위해 져 나르는 모습이리라.

눈이 강산에 가득 쌓이고 하늘이 어둑어둑 저물어가니 강바람이 좀 맵겠는가. 강물은 꽁꽁 얼어붙어 나룻배는 얼음에 갇혀버렸고, 강 얼음 위로 흰 눈이 쌓여 끝없는 설원(雪原)이 전개되니 사위는 고요하여 적막하기 그지없다. 날새조차 보금자리를 찾아간 어두울 녘이 되자 나뭇짐 져 나르는 발길이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다.

나루터로 뚫린 얼어붙은 벼랑길로 두 사람은 등이 휘도록 나뭇짐을 지고 올라가고, 한 사람은 배 곁에 쌓아놓은 나뭇더미에서 나뭇단 한 아름을 추슬러 안고 있다. 아마 지게에 짊어지려는가 보다. 나루터 주변에 널려있는 검은 바위들은 눈 속에 파묻히지 않아 그 자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흰 빛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그늘진 골짜기에 벌써 어둠이 짙게 물들기 시작하자 언덕 위의 소나무 숲이 갑자기 후미지게 느껴진다. 강물이 씻어가 낮은 벼랑을 이룬 벌판 위에는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데 눈꽃을 피우며 아련히 어둠에 묻혀가고 있다.

해질 녘 눈 쌓인 강변 정취를 유감 없이 드러내주는 표현이다. 앞산 봉우리 위의 잡수림에는 마지막 새어나온 낙조(落照)의 잔광(殘光)이 언뜻 비치는가도 싶다. 영조 16년 비단에 먹과 엷은 색으로 칠한 29.4×23.0㎝ 크기로 간송미술관 소장품.

최 완 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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