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그랬듯이 당적을 변경하는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소신을 주장하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정당은 정치적 신념을 같이하고자 하는 국회의원들의 합류를 환영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정말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할 정도로 투철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적을 변경한 것일까.
▼해바라기성 탈당 지나쳐▼
오늘날의 민주정치는 정당정치, 정당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정당을 통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민주주의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당을 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正當化)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정당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이유는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결집시켜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 즉,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개별적으로 확인해 반영하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당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도 정치적 성향이나 소신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보조를 맞출 경우 그들의 주장에 무게를 실을 수 있고, 나아가 이를 관철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정당을 통한 연대는 정치현실에 비추어 불가피하다. 그 결과 현대국가는 정당국가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政黨)이 정당(正當)한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단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이익에 봉사하는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의 의사가 정당을 통해 수렴되고, 수렴된 의사가 정당 소속의원들 또는 대통령이나 장관들을 통해 국정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선거, 특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평가보다 후보자들이 어느 정당의 공천을 받았는지가 당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정당의 공천이 선거의 결과를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국회의원은 일차적으로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므로 정당의 대표자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국회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이 정당의 지시에 구속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위임이라는 대원칙은 여전히 타당하고, 의원들의 당적 변경도 위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처럼 정당을 통해 선거에 당선된 의원들이 이제 새로운 정치적 상황을 맞아 소속정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에 입당하거나 신당 창당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소속정당이 독재화되어서, 또는 정당의 성향이 변질되어서 도저히 그 정당과 함께 행보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을 박차고 나오는 경우라면 국민들이 그 용기를 칭찬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단지 이해관계에 따른 움직임, 보다 나은 ‘그늘’을 찾으려는 노력에 불과하다면 해바라기성이라는 비난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국민대표 자격 의심스러워▼
한국정치의 해묵은 고질 가운데 하나는 정치의 중심인 정당의 생명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특히 대통령선거를 치를 때마다 기존 정당은 공중분해되거나 명칭을 바꾸는 일을 거듭해 왔고, 대통령 후보자를 중심으로 정당이 새로 생기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당의 자기정체성에 기초한 지속적인 정책 개발과 안정적인 정책수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자이다. 대표자는 국민을 위해,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시켜 국가사무를 처리해야 한다. 의원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대표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연 당적을 바꾸는 의원들은 국민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가?
대선 직전의 시기를 ‘겨울철새의 계절’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기를 바란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