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주홍/北에 당당히 할말 하라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8시 45분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선뜻 시인함에 따라 1994년 봄에 이어 또다시 한반도에 핵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 의지와 능력을 공언한 것은 전례가 없는 까닭에 지금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딜레마에 처해 있다.

▼北요구 협상대상 안돼▼

여기서 북한측 의도는 분명하다. 핵카드를 또다시 흔들어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최대한 확보해 보자는 것이다. 이렇듯 북측의 뜻대로 앞으로 사태가 전개될지는 물론 지켜봐야 하겠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94년 당시는 북한의 핵개발이 의혹 수준이었는데 비해 지금은 그것이 아예 기정사실화 돼버렸다는 문제의 성격이 다른 점이 있고, 분위기도 대(對) 이라크전을 앞두고 있는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에 호락호락 이끌려 갈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북한의 핵 도박의 성패 여부에 따라 남북한과 미국 모두 실로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일대의 위기국면이 지금 전개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협정, 그리고 제네바 핵합의문 및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모두를 한꺼번에 파기한 ‘불량국가’요 ‘악의 축’임을 이번에 스스로 입증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 공은 북한측에 가있는 만큼 비록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고 해도 우리와 미국의 태도는 당당하고 의연해야 한다.

지난 4년10개월 동안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북핵 및 미사일 문제는 미-북간의 현안으로서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태도를 취해왔고, 심지어 “북핵 문제는 없다”며 사실상 북한측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핵 정보를 미측으로부터 사전에 입수하고도 행여 북한의 비위를 건드릴까봐 노심초사했고, 이젠 아예 노골적인 핵 공갈에 직면했음에도 오히려 북측의 ‘대화의지’만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실로 황당한 자기 기만의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 모두 햇볕정책 때문이다.

전략적 현실주의 관점에서 엄밀히 분석해보면 지금 북한은 협상을 통해 국면타개를 원하고 있다기보다는 협박을 통해 실리 극대화를 노리고 있다. 즉 정상적인 외교협상이 아니라 한국의 안보를 인질삼아 미국과 담판을 요구하는 고도로 위험한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는 결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미리 못박고 나온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핵 문제가 국가안보의 최대 현안임을 인식하고 철저히 위기관리 차원의 한미공조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남북대화와 대북교류 협력사업도 반드시 핵 문제와 연계해 추진해야 하며 현재와 같은 ‘핵 따로’식 정경분리 대응방법으로는 오히려 북측의 대미협상 입지만 강화시켜주어 한미공조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금강산관광 등으로 일방적인 대북 현금지원을 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설득수단인 경제제재 조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북한이 제네바 합의문을 파기한 이상 경수로 건설사업의 유보는 불가피하고 금강산관광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경의선 및 동해선 연결도 엄격한 상호주의와 검증주의에 입각해 군사적 신뢰구축이 병행되지 않는 한 지연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며 이 정부가 또 국민에게 겁을 줄지 모르나 정직한 정부라면 정작 그 질문은 북한측에 해야 한다. 만약 북측이 남북대화에서 핵문제를 다루기를 거부한다면 회담의 결렬도 불사할 수 있어야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위기관리 능력 보여야▼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앞으로의 전망은 대단히 어둡고 불확실하다. 테러와의 전쟁 연장선 상에서 북한의 핵 위협에 강력히 대응하려는 미국이 비록 외교적 해결이지만 결코 빅딜을 시도할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네바 합의문을 ‘미제의 항복문서’라고 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역시 체제유지와 통일의 수단이라고 자부한 핵카드를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며, 김정일을 ‘통큰 실용주의자’로 치켜세워 온 이 정부가 과연 대미 공조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걱정스럽다.

본격적 위기는 지금부터인데 정작 정부의 위기관리 의지와 능력이 의심스러운, 그야말로 안팎의 위기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국민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이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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