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상록/어느 단체의 ´김대업 보호´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8시 31분


“김대업(金大業)씨는 잠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편파 수사에 더 이상 협조할 수 없어 조사에 불응하는 것뿐입니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1층 기자실에는 ‘민주개혁국민연합’ 관계자들이 찾아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들은 김씨 건에 대한 ‘항변’으로 말문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요지는 “대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테이프 감정 결과는 믿을 수 없으며, 따라서 제3국에 테이프 감정을 의뢰하겠다”는 것.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 ‘뜻 있는’ 언론사는 테이프 감정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3개 언론사는 제외시키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들이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내세운 근거는 너무나 허술했다. 1차 감정 당시 검찰이 ‘편집 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발표했고, 2차 감정 발표 10여일 전에도 일부 언론에 같은 내용이 보도됐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의혹이 있다는 게 근거의 전부였다.

국과수와 서울대가 2차 감정에 새롭게 참여했고 감정 기간도 1차(13일) 때보다 훨씬 긴 48일 동안 진행됐으며 1차 감정의 판단을 바꾼 것은 잡음의 차이 때문이라는 검찰 발표에 대한 합리적 반박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 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배포한 자료 역시 김씨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한 것에 불과했다.

이들이 검찰의 조사에 불응하고 있는 김씨를 설득하기보다는 ‘보호’라는 명목 하에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단체는 98년 12월 ‘사회 전반의 개혁과 남북통일운동’이라는 목표아래 창설됐으며 이해학 민화협 공동의장, 효림 보광사 스님 등 재야 각 분야 14명이 공동대표로 선임돼 있다.

시민단체가 누군가와 뜻과 행동을 같이하는 것은 자유다. 다만 주장을 내세울 때는 공감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가 있어야 한다.

국과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범죄수사기관인 미국 연방수사국(FBI) 기준에 따라 테이프를 감정했다고 밝혔다. 어떤 ‘제3국의 기관’이 감정 결과를 뒤집게 될지 궁금하다.

이상록기자 사회1부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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