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인교는 외톨이다. 코트가 아닌 벤치에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다. 농구선수로는 환갑이라는 서른 줄에 접어든지 벌써 몇 해. 주위에서는 그를 한 물 간 ‘늙다리 선수’로 취급한다. 정말 그의 농구는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프로농구 개막을 나흘 앞두고 만난 그의 모습은 뜻밖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살이 빠져 홀쭉한 양 볼. 오직 눈 빛만이 무섭게 번쩍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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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말 모비스에 입단했을 때 그의 체중은 100㎏. 1년 가까이 방황하면서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가 그 동안 체중을 빼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눈물겹다. 한 끼 식사가 사과 한 개. ‘농구를 하기 위해선 우선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독하게 마음먹고 매일 기진맥진할 만큼 땀을 흘렸다. 석 달만에 다시 재보니 86㎏. 전성기 때의 몸으로 돌아왔다. 정인교는 최근 팀의 일본 전지훈련에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드러내보였다. 경기당 서너개의 3점포. 이에 자신을 얻은 그는 오전 오후 훈련도 모자라 밤에 개인훈련까지 자청하며 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대와 산업은행을 거친 정인교는 국내 최고의 장거리포로 이름 날리며 94∼95시즌 농구대잔치에서 득점왕과 3점슛왕 타이틀을 차지한 스타플레이어. 프로농구 원년인 97시즌엔 나래 블루버드(현 TG)를 준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었다.
그에게 시련이 찾아든 것은 98년. 기아와 코리아텐더를 전전하며 유랑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에는 자유계약선수가 됐으나 받아주는 팀이 없어 ‘코트의 미아’로 전락했다. 겨우 다시 코리아텐더에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련선수’ 신분. 5년 이상 해마다 1억원 이상 너끈하게 받았던 연봉은 1800만원으로 떨어졌고 작년 시즌 성적은 단 1경기에 출전해 3분을 뛰며 3점슛 한 개를 던진 것이 전부.
그런데도 그는 왜 농구를 떠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잊고 가족이 있는 괌으로 갈 생각을 하지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끝내기는 너무나 억울했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걸어온 외길이 아닌가.
마침 새로 모비스팀을 맡은 최희암 감독이 그를 불렀다.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계약조건은 모두 구단에 백지위임했다. 2년 계약에 연봉 6000만원.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없습니다.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꺼지기 직전의 촛불’에 비유한다. 이번 시즌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워보겠다는 각오다. 이제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와서인가. 다시 농구공을 잡은 그의 표정은 더욱 결연하다.
정인교 시즌별 성적 | ||||
시즌 | 소속 | 정규시즌 기록 | 평균출전 | 연봉 |
97 | 나래 | 19.8점, 3점슛 91개 | 35분 | 1억원 |
97∼98 | 19.8점, 3점슛 146개 | 32분 | 1억3000만원 | |
98∼99 | 기아 | 8.8점, 3점슛 64개 | 25분 | 1억2700만원 |
99∼2000 | 11.2점, 3점슛 82개 | 28분 | 1억1000만원 | |
2000∼2001 | 코리아텐더 | 7.2점, 3점슛 40개 | 21분 | 1억1000만원 |
2001∼2002 | - | (3분) | 1800만원 | |
2002∼2003 | 모비스 | - | - | 6000만원 |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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