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월드]전문직-BMW, 중년층-벤츠 선호

  • 입력 2002년 10월 23일 17시 25분


서울 문정동 아파트촌에 사는 P씨. 백발이 드문드문 난 50대지만 BMW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5를 직접 몰며 운전 자체를 즐긴다. 기사를 두고 외제 세단을 굴리는 친구들도 여럿이지만 운전의 참맛을 즐기려면 SUV가 더 낫다고 믿고 있다.

삼성동 아셈타워의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K씨(37·여)는 행여 길에서 폴크스바겐의 소형 세단 ‘골프’와 마주칠 때면 눈을 떼지 못한다. 국산 중형차보다도 고가이지만 차라리 돈을 더 모아 아담한 외제차를 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외환위기 전 국내 수입차 시장은 획일적인 시장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튀지 않는 외관을 갖춘 세단형만을 찾았고 차종도 독일산 최고급들에 국한됐다. 또 운전을 개인기사에 맡기고 뒷자리에 앉는 것도 비슷했다.

한국 일본의 수입차 판매 비교
판매순위한국일본
회사 판매대수회사판매대수
1BMW3712폴크스바겐45772
2렉서스2257벤츠36232
3벤츠1647BMW26741
4다임러크라이슬러1204볼보11937
5포드 868푸조10991
기간 2002년 1~9월. 푸조는 12월 국내 판매 예정. 렉서스는 일본에서 도요다 브랜드로 판매.
자료: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일본자동차수입조합

그러나 이같은 오랜 수입차 트렌드는 최근 서서히 변하고 있다. 수입차를 찾는 저변이 넓어지면서 팔리는 차종도 다양해졌다.

그동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조업체의 브랜드 이미지가 자동차 마니아층에게 먹혀들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국물’을 먹어본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벤츠나 BMW 등 최고급 브랜드가 독주해온 수입차시장에도 지각변동의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입업체가 밝힌 손님들〓국내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BMW의 고객층은 30, 40대가 전체의 66%를 차지한다. 꾸준히 역동적이고 세련미를 강조하는 쪽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친 덕택으로 보인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고 여성고객이 30%를 차지한다.

각지고 둔탁한 세단형 외관을 오랫동안 고집해온 볼보는 ‘안 튀는 고학력층’이 즐겨 찾는 차로 불린다. 고객들의 연령도 아직은 40대가 대부분이다. 과시형 소비가 자리잡은 국내 수입차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구매패턴이다. 외국에서도 ‘안전한’ 차란 이미지가 강해 중장년층이 즐겨 찾았지만 최근 세단의 외관을 세련되게 바꾸면서 오랜 이미지를 탈피하려 노력하고 있다.

벤츠나 렉서스는 아무래도 나이 지긋한 고객층이 많다. 대개 운전사를 두는 경우가 많아 운전 자체의 즐거움보다 조용하고 안락함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번 타면 평생 고객이 되는 점도 비슷하다.

중소형차 부분에 강세를 보이는 폴크스바겐이나 아우디는 여성고객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 가격이 국내 중형차 가격보다 조금 비싸 고소득층의 ‘세컨드 카’로 주로 팔린다. 디자인이 부드럽고 현대적인 점이 강점.

포드 GM 크라이슬러 등 미국차들은 미국에 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온 전문직 실용파들이 즐겨 찾는다. 고객들도 명차라기보다는 외제차로 본다고 한다. 다만 GM코리아가 파는 사브는 ‘수수한’ 외양과 달리 드라이브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꼭 타고 싶어하는 차종이다.

▽아직도 과시형 소비가 대부분〓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 사이에서 한국 수입차 시장은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외국시장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구매패턴과 동떨어진 면이 많기 때문.

국내 수입차시장 베스트셀러는 BMW의 5시리즈였다. 그러나 최근 이보다 훨씬 비싼 대형 7시리즈의 새 모델이 나오자 곧바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굳혔다. 다른 수입업체 대표인 A씨는 “고소득층에서 BMW를 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같은 BMW라도 고가 시리즈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라고 분석했다.

볼보 폴크스바겐 아우디 사브 등 중소형 차종에 강점을 가진 업체들이 한국시장에서 유달리 점유율이 낮은 것도 국제적으로는 드문 현상이다. 이들 업체의 국내 판매망이 취약한 탓도 있지만 엔진배기량 대비 차의 크기보다도 무조건 실내가 큰 차를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패턴과도 관련이 깊다. 영국에선 왕족들이 타고다닐 만큼 평판이 좋은 재규어가 국내에선 벤츠나 BMW만큼 고급스러운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특이하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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