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노벨상의 비결

  • 입력 2002년 10월 23일 18시 22분


미국 대통령 11명의 어머니를 분석한 보니 앤젤로의 저서 ‘대통령의 어머니들’을 보면 어릴 적 성장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타임지 백악관 출입기자로 활동했던 저자는 자신의 취재를 바탕으로 대통령 어머니들이 어떻게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워냈는지 소개하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어머니 사라에서부터 빌 클린턴의 어머니 버지니아까지 대통령 마마들은 아들에게 독서와 토론을 강조했던 공통점을 지닌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모친은 아들이 다니는 하버드대 앞으로 이사를 갔을 만큼 극성이었다. 한결같이 아들을 엄하게 다룬 것도 비슷하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잘못했을 경우 어머니로부터 귀를 꼬집히는 벌을 당했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꺾어온 회초리로 매를 맞았다고 한다.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 3명이 한국을 방문해 엊그제 강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은 어린 시절 과학공부에 몰입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우리와는 크게 다른 이들의 성장 환경에 부러움과 동시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에릭 코넬은 고등학교 시절 과학선생님을 통해 물리학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198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더들리 허슈바크는 시골의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똑같이 과학선생님이 있고 시골이 있기는 하지만 과학자를 키워낼 만한 환경이 못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과학이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려면 실험실이 필수적인 공간인데 이곳이 해묵은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과학선생님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과학을 향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보다는 대학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따도록 가르치는 일이 훨씬 급하다. 더 슬픈 현실은 어린이들이 산과 들을 누비며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눈을 뜰 수 있는 시골에 온통 노인들만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렀으며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니 이제 남은 꿈은 과학이나 문학 부문의 노벨상을 타는 것이라는 희망 섞인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머지않아 기초과학 부문에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할 때 대학입시에서 이공계 대학들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과학교육의 뿌리가 사라지다시피 한 이 땅에서 노벨상의 꿈이 웬말이냐는 생각이 앞서는 게 좀 더 솔직한 심정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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