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화 용의˝ 상투적 수단▼
그동안 한미간 대북 인식의 근본적 차이 때문에 대북 공조는 공허한 말뿐이었고 실질적 내용도 있을 수 없었다. 한미공조를 기축으로 한 국제 공조만이 효과적 대응책이 될 수 있는 이번 사태를 맞아서도, 그 인식차이는 여전하니 심히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의 평화적 사태 해결 의사 표명에 우리 정부가 즉각적인 공감과 환영을 표시했지만 여기서 평화적 해결이라 함은 전쟁을 해결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것이 곧 대화를 통한 해결을 의미한다고 보고 그 대화를 위해 지금까지 해온 온갖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등 문제 해결의 방법과 접근 방식에 있어 근본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더욱 북한의 핵개발 시인을 대화 의사의 표현이라고 미화하며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칫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평양에서의 장관급 회담에 임해 우리 대표단이 핵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으나 북한이 우리만큼이나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의 협력 지원사업의 지속 문제도 함께 협의했으므로 오히려 북한으로서는 그 쪽에 무게를 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또한 우리 대표단을 접견한 북한의 김영남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였는 바, 이것은 북한이 오랫동안 지켜온 상투적 수단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한미 공조가 반드시 미국 입장만을 추종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포함한 모든 핵 관련 협정을 위반해 핵폭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먼저 이 프로그램을 즉각 가시적으로 폐기해야만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미국 입장이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그러한 입장을 토대로 튼튼한 한미 공조를 하루빨리 복원하고 나아가 폭 넓은 국제 공조를 형성해 단호한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 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의 길이다.
흔히들 이번 사태를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시의 충격과 비교하는데 사실 이번 사태는 그때보다 몇 배 더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에는 북한의 핵 활동이 전력 생산을 위한 원자력 발전 시설 건설이라는 명분이 있었다(비록 내용상으로는 핵 발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플루토늄에 있었지만).
그러나 이번 사태는 아무런 명분이 없는 핵폭탄 직접 제조 과정 그 자체이며 불량국가, ‘악의 축’임을 자인한 것이다. 1993년 당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이 원자력 평화 이용에 따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하고 NPT를 탈퇴한 데 있었다. 당시의 관련국 입장도 지금과는 달랐다. IAEA 제소에 따라 유엔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했으나 사찰을 촉구하는 미온적 수준에 그쳤고, 제재수단이 수반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결의안은 중국의 거부 입장 때문에 추진되지 못했다.
▼´先폐기-後협상´ 국제 공조를▼
그러나 지금은 북한에 대해 단호한 국제적 제재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도 북한의 노골적 핵무기 개발이 몰고 올 수 있는 동북아 및 국제 안보적 파장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1993년과 달리 EU도 이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으로서 직접 당사자가 되어 있다.
우리 정부는 대북 협력과 지원을 현재 일정대로 추진해야 핵 문제를 푸는 협상도 가능하고 또 한국이 협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환상과 착각의 극치(極致)이다. 그것은 북한이 종래대로 협박이 상당한 대가를 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갖게 할 뿐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북한이 확실하고 가시적으로 이를 포기하고 앞으로 제네바 합의 및 어떠한 핵 관련 협정도 위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대북 지원이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 중요 언론들의 지적이다.
최동진 인제대 석좌교수·전 경수로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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