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단골 空約´ 이제 그만▼
그동안 김대중 정부는 1997년 대선에서 공약한 대로 여성특별위원회에 이어 여성부를 신설했고, 6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을 설치하는 등 여성관련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나 지위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여성단체들은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에게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주류로 참여하면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고, 각 후보들은 이러한 요구를 감안해 갖가지 ‘장밋빛’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들을 보면 그 내용 면에서 약간의 변동은 있으나 대부분 선거 때마다 거론되어 온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호주제 폐지’다. 호주제는 지난번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그 폐지를 약속한 바 있으나 김대중 정부는 이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각 후보진영이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지난번 대선에 출마했던 이회창 후보를 비롯해 대부분의 후보들이 궁극적으로는 호주제를 폐지한다는 입장이면서도,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남성들을 의식해 호주 승계 순위 조정 방안을 제시하거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 때보다 오히려 후퇴한 내용이다.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여성참여 확대도 늘 거론되는 내용으로 각 후보는 고위직 할당을 약속하고 있지만 ‘목표로 추진하겠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실행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 대표였던 한나라당은 비례대표 30% 여성할당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모두 경선제를 명분으로 지방의회 후보의 여성 30% 할당제를 지키지 않아 자신들이 만든 법을 스스로 어겼다.
이번에도 대부분의 대통령후보들이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의 여성할당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공약을 새롭게 제시했으나 이미 자신들이 만든 법도 지키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정말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특히 광역의회 비례대표의 70%를 여성에게 할당하겠다는 공약의 경우, 일견 여성들의 지방자치 참여 폭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 공약이 실현되어도 숫자로는 50명도 되지 않아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 숫자가 대폭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취업 여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녀양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육정책도 선거 때마다 제시되는 공약이다. 이것이 또다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이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친양자제’는 이번 선거에서 새롭게 제시된 주요 쟁점인데, 주요 세 후보가 모두 친양자제 도입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관련된 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다수당과 집권여당이 국회에서는 지금까지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있으면서 왜 대통령 당선 뒤로 이를 미루는지 이해할 수 없다.
▼립서비스 아닌 가능한 약속을▼
여러 대선 후보들이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여성 분야에 관해 비슷한 정책들을 반복해서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이 분들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이러한 정책들을 얼마나 실효성 있게 추진할까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다 실현된다 해도 여성의 사회참여가 확대되고 그 지위가 향상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 각 후보진영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현 위치를 다시 점검해보고 그 동안의 여성정책을 진지하게 평가한 후, 보다 새롭고 포괄적이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시해주기를 기대한다.
김경애 동덕여대 교수·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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