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인문학과 소설 텍스트의 해석´

  • 입력 2002년 10월 25일 17시 41분


◇인문학과 소설 텍스트의 해석/서정철 지음/564쪽 1만8000원 민음사

움베르토 에코는 인간만이 지니는 ‘부재를 연출하는 능력’을 일찍이 간파한 바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부과된 강제적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망을 지니기 때문에, 그런 인간에게 허구적 이야기를 꾸며내고자 하는 충동은 필연적인 것이다.

인간은 지금 존재하는 것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도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다. 작가는 종이 위에서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언어의 집과 세계를 만들어 낸다. 온갖 욕망과 판타즘(phantasm·환상),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금기나 제약 없이 펼쳐지는 소설의 공간은 다름 아닌 자유와 상상력과 해방의 공간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질곡과 억압으로 얼룩진 인류의 역사와 대비되는 소설의 역사는 자유와 창조의 역사로서 인간 실존의 다양한 모습들을 발견했으며 새로운 상상력과 가치의 대륙을 개척해 왔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통해 근대적 모험을 예고했고, 발자크는 역사 속에 뿌리내린 인간의 근원적 모습을 보여 줬다.

리처드슨은 인간의 내밀한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표현했고, 플로베르는 일상적 욕망의 끈적임을 엠마 보봐리를 통해 드러냈다.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는 포착할 수 없는 과거 시간과 현재의 찰나를, 토마스 만은 현재를 조종하는 신화의 모습을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소설을 통해 탐구했다. 말하자면 근대이후 소설은 (돈키호테의 모험에서 출발해서 디포우를 거쳐 카프카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영역과 사유의 지평을 확장해 온 셈이다.

다 알다시피 소설은 문학의 고전적 규범들을 모두 파괴하면서 (시민 부르주아 사회의 부상과 맞물려 성장한) 정복자의 모습으로 모든 표현의 형태를 가지고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시도했다. 이런 역사적 성장과정과 그 맥락을 고려한다면, 소설이 방대한 인문적 지식의 바다로 흘러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소설은 “단순한 미학적 형식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 인간의 정서와 행동을 철저하게 변형시키는 현상”(프랑코 모레티)인 동시에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를 일궈내는 토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장르의 구분에서 벗어나 소설을 ‘이야기 텍스트’로 규정할 때 소설과 인문학과의 만남은 더욱 더 극적이고 풍요로워진다.

롤랑 바르트로부터 영감을 얻어 새롭게 규정된 ‘이야기 텍스트’ 개념은 자크 라캉과 벨만 노엘의 정신분석학,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 미셸 푸코의 계보학과 담론이론, 미하일 바흐찐의 크로노토프 이론, G 주네트의 서사학 등 다양한 인문학 이론의 그물망을 통해 여과된다.

격조있는 인문학 강의인 이 저서에서 저자는 소설은 단순한 흥미거리가 아니라 현대 인문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음을 풍부한 사례를 들어 확인하고 있다.

가령, 광기와 성의 역사를 통해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소멸을 예고한 푸코에게 있어서 사드와 바타이유의 소설은 근대로의 이행을 알리는 에피스테메(episteme·인식소 또는 인식체계)의 단절을 드러내는 적절한 예이다. 무의식을 언어구조로 파악한 라캉의 위상학(位相學)의 핵심인 상상계, 현실계, 상징계 이론은 에드거 앨런 포우의 작품 ‘도둑맞은 편지’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바흐찐의 대화주의와 다성성(多聲性)의 문학론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에서, 카니발과 전복이론은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에서 배태됐다.

주네트의 서사학과 벨망 노엘의 정신분석학 문학방법론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크게 의지하고 있으며 바르트의 텍스트론은 다양한 문학 작품에 뿌리내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위반과 착란의 언어를 구사하는 바타이유, ‘아무 것도 긍정하지 않는 긍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블랑쇼의 글쓰기에서 소설이란 이야기 텍스트는 단순한 인문적 자양분의 제공자가 아니라 철학 너머의 사유와 그 언어체험을 가능케하는 ‘바깥의 사유’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많은 서구 인문학 이론의 소개가 문학과의 소원한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 책에서는 소설이라는 이야기 텍스트 읽기에 충실하면서도 서구 현대 인문학의 커다란 흐름을 크게 포획하려는 야심찬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게다가 문학 텍스트를 통해 현대 서구 인문학의 대가들과의 만남은 기분 좋은 지식의 산책이며, 원전의 적절한 소개와 인용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지적 발견이자 학문적 성과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이야기 텍스트로서의 소설이 보다 종합적이고 큰 틀의 인문학적 범주에서 중층적으로 논의되려면 언어학을 바탕으로 한 후기구조주의 인문학의 입장뿐만 아니라 리쾨르나 가다머의 해석학, 에코나 들뢰즈의 기호학, 지라르의 인류학적 지평도 당연히 소개됐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김동윤(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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