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문학의 위기라는 주제가 유행처럼 떠돌더니 이제는 대학이 위기라고들 한다. 국내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들어오려는 학생이 크게 줄고, 시장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폐과되는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대학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내세운 구호는 대학에서 ‘실용적인’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시장에서 요구하지 않는 학문은 할 필요가 없다는 시장만능주의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한국에서 ‘실용주의’에 대한 이해는 이런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이 제일 가까운 우방이라고 떠들어 대면서도 국내에는 미국의 대표적 철학인 ‘실용주의’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서가 거의 없다. 심지어 인문학의 위기를 고민하는 학자들조차 ‘실용주의’를 철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용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는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저자가 책의 제목을 ‘실용주의’라고 하지 않고 ‘프래그머티즘’이라고 정한 데 대해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든다. 외래어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용주의라는 명칭은 우리사회에서 하나의 사상에 대한 이름이라기 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생활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짧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신적인 고민들을 어떻게 사상으로 승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철학자는 고전적인 프래그머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C S 퍼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 그리고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리처드 로티 등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철학자, 과학자, 법률가들이 모여 토론했던 ‘형이상학 클럽’에서 퍼스의 프래그머티즘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심리학의 원리’라는 심리학의 고전을 저술하기도 한 제임스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깊이 있는 철학적 숙고를 했는지 알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 미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듀이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철학적 성찰을 했고, 또 그것이 미국 민주주의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친절한 서술을 접할 수 있다. 로티의 네오프래그머티즘이 왜 유럽철학계에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대목에서도 대학을 실용학문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퍼스의 이론은 하버마스의 보편화용론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고, 제임스와 듀이는 누구보다도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로티는 그들을 계승하여 문학적인 문화, 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에 대한 메타포들을 뽐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철학자이다. ‘실용주의’가 반인문주의적이고 시장논리에 부합하는 입장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리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유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서양철학
yusunlee@hotmail.com